라디오 > 표준FM > 격동 50년 방송 : AM 11시40분 ~ 12시    해설 : 원호섭   작가 : 이석영   연출 : 오성수
방송 작품개요
내용보기
등장인물
  70화 민주화 연대기(年代記)
  69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68화 16대 총선과 낙천·낙선 운동
  67화 참여정부의 도전과 위기
  66화 아홉 굽이 헌정사
참여하기
  자유게시판
  청취자제보
 
 
제64화 노태우 비자금 사건

다큐멘터리 드라마《격동 50년》제64화

1. 제목 : ‘노태우 비자금 사건’


2. 기획의도

  이제까지 부정한 정치 자금 의혹은 수 없이 제기되어 왔으나 결과는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은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두 전직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을 법정에 세웠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할 것 같았던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법 이론을 뒤집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노태우 비자금 의혹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노태우 비자금은 다른 의혹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움직일 수 없는 뚜렷한 물증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사법부의 확고한 의지 때문일까?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노태우 비자금 의혹이 전직 대통령들의 사법 처리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성공한 쿠데타도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국민 여론과, 그 여론을 정확하게 전달한 언론의 힘이 아니었을까? 한 야당의원의 폭로에서 비롯된 비자금 의혹이 어떻게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고, 5·18 특별법을 제정해 그들을 단죄(斷罪)하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짚어가면서, 다른 의혹들은 의혹(疑惑)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여론과 언론의 관심이 무뎌진 탓이 아닌지 반성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3. 주요 내용

- 1995년 6·27 지방 선거에서 여당의 패배
- 삼풍백화점 붕괴의 여파
- 검찰의 5·18 관련자에 대한 ‘공소권 없음’ 결정과 이에 대한 시민 단체와 학원가의 반발
- 새 정치 국민회의의 창당과 김대중의 정계 복귀
- 문민정부의 인기 하락과 여당 내 민정계의 이탈 움직임
- 총무처 장관 서석재의 전직 대통령 4천억 비자금설 파문과 해임
- 박계동, 국회에서 노태우 비자금 폭로
- 대검 중수부, 관계자 소환 조사
- 노태우, 대국민 사과 성명
- 김대중, 노태우로부터 20억 수수 고백
- 강삼재, ‘김대중의 20억 +a’ 설 제기
- 대검, 노태우 소환 조사
- 한보, 한양을 시작으로 삼성, LG, 현대 등 재벌 그룹 총수들 줄줄이 소환
- 대검, 2천 3백여 억 원 수수 혐의로 노태우 구속, 기소
- 김영삼, 5·18 특별법 제정 밝힘
- 국회, 5·18 특별법 통과
- 전두환, 5·18 관련 혐의로 구속, 비자금도 수사
- 민자당, 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
- 신한국당, 총선(96.4.11)에서 승리
- 전두환 무기, 노태우 17년 형 확정
- 전두환 2천 205억 원 추징금, 노태우 2천 97억 원 추징금 선고


4. 줄거리

  1995년 7월, 임기의 절반을 넘긴 김영삼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취임 초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던 국민들은 6;27 지방선거를 통해 여당에 참패를 안겨주었다. 개혁이 기대에 못 미친 탓도 있었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악재도 한 원인이었다. 또한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이 ‘새 정치 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정계복귀를 기정사실화하는 것도 김영삼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검찰이 5·18 관련자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림으로써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각종 사회단체들이 검찰의 결정을 비난하고 나섰고, 대학가에서는 광주 학살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데모가 이어졌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의 입장은, 5공 청문회를 통해 진상은 밝혀졌으며, 검찰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반발은 예상한 만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여당 내 민정계의 생각은 달랐다. 인기 없는 여당에 남아 있다가 공멸(共滅)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함께, 분위기 쇄신을 위해 공천 물갈이를 할 경우, 민정계가 그 대상이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위기의식은 탈당과 독자 정당 모색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럴 때에 터져 나온 것이 총무처 장관 서석재의
‘전직 대통령 4천억 비자금(秘資金) 설’이었다. 그 파장은 엄청났다. 당장 수사에 착수하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그러나 서석재는 더 이상의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다 민정계는 민정계 죽이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김영삼은 서석재를 해임하는 것으로 파문 진화에 나섰고, 그것으로 비자금 설은 일과성(一過性)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10월 19일 민주당 의원 박계동이 국회에서
노태우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이번에는 비자금 관리자와 계좌 번호 등 구체적인 물증까지 제시했다. 더 이상 미루거나 피할 명분이 없어진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게 되고, 10월 27일 노태우는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비자금 의혹을 부인할 수 없게 되자 조기 진화(早期鎭火)를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뜻밖의 변수 때문에 수포(水泡)로 돌아간다. 김대중이 노태우로부터 20억 원을 수수(收受)했음을 밝히며, 김영삼 측이 노태우로부터 받은 엄청난 비자금의 공개를 요구한 것이다. 당황한 정부·여당은 김대중의 정치자금 수수를 비난하며 ‘20억+a’ 설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정치권 전반에 대한 검은 돈 의혹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김영삼은 특유의 승부수를 띄워 국면 전환을 시도한다.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을 존중한다던 종전의 입장을 바꿔 5·18 특별법 제정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민정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여론의 지지와 야당의 전폭적인 협조로 5·18 특별법은 국회를 통과한다. 그렇게 해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들인 전두환,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고, 재벌 총수들의 줄 소환이 이어진다. 그 뒤 1996년 12월 23일 전두환, 노태우는 상고를 포기, 각기 무기 징역과 추징금 2천 205억 원, 징역 17년과 추징금 2천 97억여 원의 형이 확정된다.  


5. 등장인물

- 김영삼, 김대중, 노태우, 전두환, 최형우, 서석재, 박계동, 안현태, 박지원, 안강민 외 다수


6. 방송 : 2007년 2월 1일~4월 30일(77회 예정)





 
 
MBC
(주)문화방송 대표이사 안형준
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267 (121-904) MBC대표전화 02-789-0011
iMBC
(주)아이엠비씨 대표이사 이선태
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255 (상암동 문화방송미디어센터 10층)   1:1 고객문의 바로가기   메일 : help@imbccorp.co.kr
사업자등록번호 107-81-78996 통신판매업신고 2014-서울마포-0761 부가통신사업신고 002483호 통신판매업 정보 확인 호스팅 서비스 제공 L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