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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오전 11시 ~ 12시 연출: 김기덕  진행: 김기덕  작가: 피정우, 오기쁨  음악에세이작가: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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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8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28화 - 첫사랑


(M) 주제음 - A Love Song / 물고기자리


* 오늘 드라마는 골든디스크 청취자 정란씨의 실화를 각색한 것입니다


(E) 난로 위 주전자 물 끓는 소리


     독서실이다.

        누구 하나 말소리도 내지 않아 고요한 이곳엔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 뚜껑이

        들끓는 소리만 들린다.

        난 청소하는 척 물걸레를 들고

        여기저기를 닦아내면서

        한 남학생을 흘낏 본다.

        며칠 전부터 우리 독서실에 다니게 된 남학생인데..

        모범생처럼 반듯한 얼굴에

        늘 깔끔한 옷에

        지적으로 보이게 하는 뿔테 안경까지..

        완벽한 내 이상형이었다.

        근처에 재수학원이 있어서

        우리 독서실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재수생인데

        다들 하나같이 공부하느라 꼬질꼬질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는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군계일학 같은 존재였다.

(M) 키싱유 - 소녀시대


     한참 공부를 하던 이 남학생이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 밖으로 나간다.

        어딜 가나 슬쩍 보니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 같다.

        어떡하나.. 잠깐 망설이다가

        겉옷을 하나 걸쳐 입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E) 바람 부는 소리


     곧 3월이라고는 하지만

        밤바람은 여전히 차다.


(E) 슬리퍼 끌고 타닥타닥 걸어가는


     그 남자가 저만치에 혼자 서서 야경을 보고 있다.

        난 짐짓 모르는 척 좀 떨어진 난간 앞에 섰다.

        그리고 1분쯤 지났을까.


     (좀 멀리서) 안녕하세요.

     (놀란 척) 어머.. 사람이 있는 줄 몰랐네.. 네..

     독서실 총무님 맞으시죠..

     네? 아하하.. 총무는 무슨..

        그냥 이모가 이 독서실 운영하시거든요.

        알바 삼아 도와드리는 거에요.

     아... 대학생..이세요?

     네..

     그렇구나. 

     재수하는 거 힘들죠.

     저 재수시키느라 부모님이 힘드시죠 뭐..

        집안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요.


     옥상 난간에 나란히 선 채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 사람이 한의대에 가고 싶어서 재수를 하고 있다는 것..

        나는 집이 지방이라는 것..

        우리가 동갑이라는 것.. 등등을 얘기하다가.


     그럼.. 생일이 언젠데요?

     생일요? 나.. 일주일 뒨데..

     진짜요? 몇일?

     3월 6일.

     양력으로?

     네.

     와.. 나도 그런데?

     진짜요? 그럼 우리.. 생년월일이 모두 같은 거?

     신기하다..

     진짜 신기하다...

(M)  기적- 김동률 이소은


     꿈같은 일이었다.

        남몰래 짝사랑하던 그 사람과 그렇게 긴 얘기를 나누고.

        또 우리가 같은 날 태어났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아낸 건 말이다.

        그날 옥상에서 내려오는 어두운 계단에서

        그가 말했다.


     그럼.. 우리 일주일 뒤에.. 아까 거기서

        생일파티할래요?

     ....

     다른 약속 없다면요.

        뭐.. 있으면 할 수 없고..

     없어요. 없어. 저 약속 같은 거 없어요.

     그럼. 괜찮아요?

     네. 좋아요.


     좋다 뿐이겠는가.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 걸

        들킬까봐. 난 더 이상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M) 이 바보 - 원더걸스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리 두 사람의 생일 날.


(M) 쏴아- 비 내리는 소리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옥상에 케익 갖다놓고 촛불 끄기로 했는데.

        모두 물 건너 간 것이다.

        오후 내내 우울하게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데.


(E) 계단 올라오는 소리


     그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오셨어요.

     생일.. 축하해요.

     (어색) 그쪽두요.

     어쩌죠. 비가 와서..

     그러게요.. 

     케익은 내가 사왔는데..

     .. 그럼 여기 잠깐 들어올래요?

     그 안에요?

     여기가 이래뵈두요. 안은 꽤 넓거든요?

        들어와 봐요.

(E) 부시럭대며 들어가고

     넓죠. 

     책이.. 많네요.

     심심하니까... 여기 안에 있으면 진짜 할 일이 없거든요.

(E)책 한권 꺼내고

     이건.. 나도 좋아하는 책인데...

     어?정말요? 나두 제일 좋아하는 책인데...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사주팔자라든가..

        그런 거 안 믿는데요...

     ....?

     그런데 왠지 그런 거 느껴져요.

        우리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 같은 거.

(M) 천생연분 - 솔리드


(E) 거리 소음


     우리는 말을 놓기 시작했고.

        저녁 도시락을 같이 먹기 시작했고.

        함께 집에 가기 시작했다.

        그 흔한 밀고 당기기도 안하고

        서로가 서로를 많이 좋아한다는 걸 알려줬다.


(E) 똑똑 노크

     은서야.. 저녁..

     어. 먼저 올라가 있어. 금방 갈게.

(E) 계단 탁탁 올라가는 소리


     옥상 위 평상은 우리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저녁 스산한 바람이 부는 그곳에 앉아

        서로 싸온 도시락을 풀어놓고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E) 뚜껑 여는

     짜잔...

     동그랑땡이네?

     어. 내가 너 주려구 진짜 열심히 만든거거든? 맛있게 먹어.

     니가 그러니까 꼭 우리 엄마 같다.

     (웃고)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데?

     우리 엄마? 좋으시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분인데. 가끔 좀 무서울 때도 있는데.

        그래도.. 진짜 좋으셔.

     그럼 있잖아. 니네 엄마랑 나랑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거야?

     

     ........진짜?

     우리 엄마는 수영 잘하셔. 학교 다닐 때 대표선수하시고 그랬대.

        나도 수영은 엄마한테 배웠는데 뭐.

(M) 달리기 -SES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는 다시 한의대에 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E) 까페 소음

     ........ 뭐라고 말 좀 해.. 아까부터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기분이 안좋아서...

     기분이야.. 안좋겠지... 알았어. 얘기하기 싫으면 하지 마.

     ......또 재수는 못해.

     .......

     집안형편이 안좋아서....

     그럼 어쩔건데?

     다른 대학 전기공학과엔 합격 됐다고 하더라..

     그럼 거기 가면 되잖아. 잘 됐네. 전기공학과도 좋잖아.

     어... 근데 어머니가 바라시던 곳은 한의대였거든..

        그래서 실망이.. 크셔...

     물론 그러시겠지만... 다시 재수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나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던 거 아는데.

        요즘 날마다 눈물바람 하시는 거 보면, 맘이 안좋아..

     우리.. 여행갈까?

     어??

     그냥 기차 타고.. 가까운 데 가서 바람만 쐬고 오자구..

        너 기분이 너무 안좋은 것 같아서. 나도 요즘 우울해.

(M) 겨울 바다


(E) 파도 소리

     (추워 죽으며) 아직 겨울이구나. 너무 춥다.

     그러게 뭐하러 바득바득 바다에 오재..

        여기 봐라. 아무도 없지.

     그러게.. 나는 드라마 같은 데서

        찬 바람 맞으면서 바닷가 걸어가는 게 디게 폼나보이길래...

        스카프 날리고 걸으면 있어 보일 것 같아서

        이거 두르고 온건데.... 으 추워....

     그래도 나는 기분 괜찮다.

     ...(추워하며) 그래?

     어.. 기분 전환이 됐어.

     니가 좋으면 됐지 뭐. 아...추워....

     옷이나 좀 따뜻하게 입고 오지. 이거라도 입어.

     아 됐어.

     쎈 척 하지 말고 입어. 나는 남잔데 뭐. 괜찮아.

(M)난 남자다 - 김장훈


(E) 기차 가는 소리

     (세게 재채기 하는)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고거 꼴랑 한 시간 걷더니

        바로 감기냐?

     (재채기 하고)

     아 그러게 옷은 뭐하러 벗어줘..

     나 열도 나는 것 같애.. 이마 좀 짚어봐.

     아우 몰라.. 암튼 너 똑똑해 보여서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까 은근히 덜떨어졌어.

     야... 너는 아픈 사람한테...

(E) 탁탁 무릎 치며

     여기 누워서 눈 좀 붙여봐.

     니 무릎 베고? 여기서? 야.. 말도 안돼.


     그리고 잠시 뒤.


(E)코고는 소리

     그는 내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게, 참 행복했다.

(M) 너를 사랑해 - 한동준


     그리고 며칠 뒤..

        나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어머니라고 했다.

        놀라고 떨린 마음으로 독서실 앞 지하 까페에 갔다.

        그의 어머니는 자애로워 보이는 분이셨다.

        그가 말한 것처럼, 좋은 분이셨다.

        나는 한눈에도 그의 어머니가 좋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가 원하던 한의대에 떨어진 건

        모두 내 탓이라고 하셨다.

        좋지 않은 집안 형편 탓에

        온 집안 식구들이 그의 한의대 진학만을 원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꿈이 나 때문에 무너졌다고 했다.

        그런 나를 용서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그런 내가 여전히 그의 곁에 있는 것도 싫다고 하셨다.

        그동안 그 문제로 그와 여러 번 다투셨다고도 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의 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도 하셨다.

        나에게... 그와 헤어지라고... 말이다.        

(M) 만약에 - 태연


---------------------------1부 끝 ---------------------


* 곧이어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2부가 계속됩니다.



(E) 탁탁탁 뛰어오고

     웬일이야? 우리 집앞까지 온 건 처음이잖아.

     앉어..

     왜 그렇게 분위기를 잡고 그래. 왜 그러는데.

     우리 헤어지자....

     .........?

     ....라고 얘기하려고 그랬어. 여기 올 때까진.

     ......

     (울음 간신히 참으며) 그런데 막상 얼굴 보니까 그 말을 못하겠다.

     왜 그래....(가만 있더니) 우리 어머니 만났어?

     좋은 분 같더라. 지금은 화가 많이 나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우리가 앞으로 잘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미안해.

     ......

     그리고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 줘서.

     우리가 잘할 수 있겠지?

     나는.. 조마조마했었어. 어머니가 너를 만날 것 같았고.

        그러면 니가 나랑 헤어지자고 할 것 같았고...

     있잖아. 우리 학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자..

        남들처럼 놀고 즐기는 데이트 같은 거 하지 말고..

        공부 많이 하자.. 그래서 우리 둘 다 좋은 데 취직하면

        어머니도 그땐.. 괜찮다 그러시겠지?

     당연하지. 진짜.. 고마워..진짜...

(M) 보고싶은 날에 - VOS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

        서로를 위해서. 서로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가 군대에 갔을 무렵..

        나는 괜찮은 회사에 취직을 했고.

        그는 제대를 해서 복학했다.


(E) 덜덜덜 오는 차. 끽 서고.


     이게 뭐야?

     우리 이모부가 취직선물로 주셨어.

     주신 건 좋은데, 너무 낡은 거 아니냐?

     일단.. 타.

     야. 안돼, 나 낼부터 중간고사야.

     에이... 그래도 딱 30분만 밟아보자..

        나한텐 첫찬데.

     그럴까?

     그러자. 

(M) 낙원 - 싸이


     겨우 한강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내 오래된 차는 힘들어했고.

        우리는 한강변에 주차를 시켜놓고

        뜨거운 꿀차 한잔씩 사서

        강가에 앉았다.

(E) 강물 소리

     있잖아.. 나는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뭐가?

     나한테 너는 첫사랑이거든.

        첫사랑이 이렇게 오래.. 지루하게 갈 줄 몰랐다구.

     지루하게?

     (웃으며) 벌써 6년이야. 지루할만 하지 않나?

     지루한 거 잘 참아줘서 고맙다.

     저기....

     ....

     한번도 물어보질 못했는데. 아직도 어머니.. 나 싫어하셔?

     ....

     그래?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 나도 좀 있으면 졸업할거고..

        취직도 할 거고. 그렇게 되면, 다시 정식으로 인사하자.

     ......그럼 허락하실까?

     그렇게 만들어야지....

(M) 사랑해 - 스윗소로


     그 사람이 틀렸다.

        그가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우리가 인사를 갔을 때.

        어머니는 예전보다 더욱 냉랭한 얼굴이셨고.

        더욱 차갑게 얘기하셨다.

        단 한번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그리고 그의 마음도 곧 변할 거라고 하셨다.

        곧... 지칠 거라고.

        그런데도 

        이 길고 끝나지 않는 싸움을 계속 할 거냐고...

(M) 핑클 - 루비


(E)걸어가는데, 뒤에서 탁탁탁 쫓아오는

     은서야...

     ....어.

     이렇게까지 나오실 줄은 몰랐어.

        안 그런 분인데.. 왜 이러시는지 나도 모르겠다.

     내가 그만큼 많이 싫으시니까.. 그런 거겠지.

     기분.. 많이 나쁘지.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좀 지쳐.

     .....

     너랑 그 약속하고 5년 동안.. 이 앙물고

        한가지만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우리 둘 다 잘 사는 거 보여드리면

        좋아질 거라고. 그 희망 하나 붙들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까. 지쳐.

     .......

     그리고 너도 그럴거야.

     ............

     원래는 5년 전에 이 얘길 했어야 하는건데...

        ...........우리 헤어지자.

     윤은서!

     화내지 마. 너도 속으론 반쯤.. 포기하고 있었잖아.

        난 이번이 두 번짼데도 이렇게 지치는데

        넌 그동안 얼마나 어머니한테 시달렸겠니.

     그래. 지쳐. 나도 많이 지쳤었어.

        그치만 지친다고 포기하냐? 지친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냐?

     지치면 나중엔..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놔버리게 될걸?

        그러는 건 싫어. 지금.. 놓기 싫은 마음으로.. 날 놔주길 바래.

        우리 둘다 지쳐서.... 차라리 잘됐다 이러면서 헤어지게 되는 건

        정말 싫어.

(M) 마주치지 말자 - 장혜진


     모든 게 무자르듯 딱 잘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후로도 우리는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다.

        울면서 통화하고.

        그 사람이 내가 다니는 회사 앞으로 찾아오고.

        그러다 다시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우리 집에서도, 나를 반대하는 별 볼 일 없는 집안에

        날 보내고 싶지 않다시며, 다른 남자와 선 볼 것을

        강요하셨고.

        그렇게 떠밀리듯이 약혼까지 하게 됐다.


     너 지금.. 그게 말이 돼?

     이제 그만해. 우리 열아홉살 아니잖아.

     그래서.

     첫사랑도 끝났다구. 우리 할만큼 했어.

     은서야.

     나 두달 후면 결혼할 사람이야.

        이제 그만 찾아와.

     은서야.....

     어머니 설득할 수 있겠어?

     ........

     그럼 어머니 포기할 수 있겠어? 안보고 살 수 있겠어?

     ........

     안되는 거야 우리. 이제 인정해.

(M) 어게인 - 스페이스 에이


     다른 남자와 약혼식을 하던 날

        나는 부모가 죽은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

        당황하신 부모님은

        내가 시집갈 생각을 하니 저러나보다며..

        애써 무마하셨지만..

        내 머릿속엔 온통 그 사람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약혼식이 끝나고, 난 휴대전화에 남겨진 메시지를 듣게 됐다.


     나다. 너 오늘.. 약혼식 한다는 소식.. 들었어.

        결국.. 난 너를 지키지 못했구나.

        너는 그동안 나를 참 든든하게 지켜줬는데.

        앞으로.. 생일마다.. 어쩔 수 없이 난 너를 떠올릴거야.

        그러다.. 지치면 잊어가겠지.

        다른 남자들이 이런 말 하는 거 보면 참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상황이 되니까.. 할 말이 이거밖에 생각 안난다.

        ..행복해라.

(M)소주 한잔 / 임창정


     그리고 그 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편지 한 장 남긴 채

        지방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혼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찾아가

        휴대전화도 꺼놓은 채 몇 달을 보냈다.

        당연히 파혼 당했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 올라왔을 때.

        난 친구에게

        그 사람이 결혼을 했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울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다.

(M) 다비치 - 미워도 사랑하니까


     3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동네에 조그만 화장품 가게를 차리게 됐다.

        장사가 잘되진 않았지만

        그저 내 밥벌이 정도 하면서 지냈다.

        다 편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신혼부부의 모습을 보면

        문득문득 그도 저렇게 살고 있을까..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파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생일이 다가왔다.


(E)딸랑 들어가는 종소리


     가족들이 서울로 온다고 해서

        작은 케익이라도 사려고 제과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남자가 케익을 고르는 뒷모습을 보게 됐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사람이 돌아보는데.

        백번도 넘게 꿈꾸던.. 그상황이.. 내게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윤은서..

     ...................어... 어.... 오랜만... 그래.. 오랜만이야...

     .....

     그런데 우리 동네엔.. 어떻게... 왔어?

        아 그러니까... 내가 이동네 살거든.. 여긴 어쩐 일이야...

     너도 오늘 생일이지..?

     그렇지... 알잖아.

     잘 살아?

     .......그렇지... 넌?

     ......

     (애써 웃음) 너 결혼했다는 소식.. 들었어.

     그랬구나.

     어.. 애는? 애기도 있어?

     ........

     하긴.... 아직은 신혼이니까. 아 맞다. 내가 가게문을 열어놓고 깜박하고 나왔네. 그럼 잘 가...

(E)문열고 나가는

(E)걸어가는데, 쫓아나오는 소리

     윤은서. 

     (울음 참고) 어..왜?

     결혼했다는 소식까지만 들었어?

     어?

     니가 약혼 깼다는 소식 듣고.. 나도 결혼 못했는데.

        그 얘긴 못 들었어?

     ..........(떨리고) 어?

     니가 너무 꽁꽁 숨어버려서, 너 찾느라 진짜 고생했는데

        그런 얘긴 어디서 못들었어?

     ........

     우리 어머니도 이제 다 허락하셨고. 나는... 오늘 겨우 너 찾아서...

        생일 축하해주려고 여기온건데..... 그런 얘기도 못 들었지?!

     난.... 난.......


     눈물이 나서, 목이 메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거리에 선 채 우리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너무 기쁘면, 너무 행복하면,

        정말 눈물이 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M) 주제음



* 사연의 주인공 정란씨는 첫사랑 그남자와 결혼해서

아기 낳고 잘 살고 계신다고 합니다.

어머님은 예전 일을 미안해하시면서, 지금은 모녀지간처럼

잘 지내고 계신다고도.....




        









        




        





2008-02-27(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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