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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
사회운동가에서 늦깎이 법조인이 된
나, 전성은 최근 대학동창모임에서 오랜 친구의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학창시절 함께 혼란한 시대를 고민했던 친구 동관이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것! 활달한 성격, 잘생긴 외모로 대학시절 킹카로 통했던
친구 동관이. 대체 내 친구 김동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80년
5월 이후 시작된 정신질환
1979년 5월 군 입대. 9월 특전사 3공수여단
본부대 배치. 10월 부마항쟁 투입. 이후 12.12 군사 쿠데타를 거쳐 80년
5월 광주항쟁 진압군 투입까지. 굴곡 있는 지난 현대사의 중심에 섰던
김동관. 그러나 광주에서 돌아 온 직후, 동관은 지나가는 군인에게
시비를 걸고, 시민에게 총을 겨눈 특전사를 쏴 죽여야 한다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대 후, 82년부터 시작된 긴 정신병원
생활.
외아들의 정신병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긴 병수발에 눈물도 말라버렸다. 술에
취해 무서운 눈빛으로 ‘폭도가 온다’며 고함을 지르는 모습을 본 친구들은
친구가 무섭다며 떠나갔다.
11년 간의 결혼생활도 파경을 맞았다.
발작이 시작되면 이성을 잃고 칼을 드는 남편을 피해 아이를 업고 산으로
도망가야 했던 아찔한 결혼생활의 연속. 갓 중학생이 된 외아들이 떠올리는
아빠는 ‘무서운 괴물’이다.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친구 동관.
그러나 26년 동안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군인에 대한 분노와
증오이다.
▶ 특전사
3공수여단 동료의 증언 - 5월 피바다가 된 광주 거리
80년 5월 20일. 7공수와 11공수의
시위 진압 사흘째, 3공수여단이 광주시내에 추가 투입되었다. 동관과
함께 광주에 투입됐던 3공수여단 본부대 소속 이상래 씨가 본 당시 광주역전은
피바다였다. 악화된 시내 상황에서 3공수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본부대
병력까지 실탄을 지급하고 광주역으로 내보냈다.
또 동관과 함께 근무했던 3공수 본부대
행정병 장현일 씨는 군 생활에서 동관이 보인 정체성의 혼란을 구체적으로
기억해냈다.
과연 김동관이 광주에서 겪은 기억은
무엇일까?
▶ 후유증에
시달리는 진압군 사병들
한 선교원에서 만난 7공수여단 출신
사병 단모 씨는 광주 이후 불면증과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다 급기야
정신착란 상태에서 형수를 살해했다. ‘형수가 너를 죽이려 한다’는
환청 때문이었다.
20사단 62연대 출신 김응래 씨는 시민군이
쏜 총에 옆에 있던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본 후 정신분열 증세를 보였다.
그는 남동생에게, 당시 시민군 학생들을 보고 ‘네가 떠올라 총을 쏘지
않았다’고 했다. 증세가 심해진 그는 2003년, 퇴원한 지 8일 만에 철길에서
사고사를 당했다.
▶ 26년
만에 말문을 열다!
동관과의 MT를 계획한 친구들. 늦은
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동관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광주에 대한 기억을 꺼낸 것이다. 3공수가 주둔했던
전남대로 돌격한 시민군 버스. 그리고 그가 목격한 충격적 진실! 광주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에게 지급된 실탄을 안 쏘는 것. 그것 밖에
없었다고 했다.
▶ 시대의
아픔이 낳은 또 다른 김동관. 그리고 치유의 가능성
인천에서 5.18 꽃집을 운영하는 이광석
씨는 진압군에게 붙잡혀 고문 후유증으로 동관과 같은 정신지체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는 지금도 진압군이 잡으러 오는 꿈에 시달리지만
군인들 역시 또 다른 5.18의 희생자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지난 4월. 친구들의 주선으로 정신재활
전문가인 아주대 정신과 이영문 교수를 만난 김동관. 교수는 적극적인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동관의 사회복귀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26년 만에
시도하는 제대의 몸짓. 그는 이제 과거의 기억을 털고 비로소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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