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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거리로
내몰리는 한국기업가들, 왜?
2007년
12월. 중국의 상해, 청도, 베이징에서 만난 그들.
그리고
또다시 2008년 2월.
하루요금
30원인 어느 한 모텔. 오늘도 김사장은 중국거리를 헤매다 좁은 모텔
방으로 돌아왔다.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쉼 없이 달려온 지난 10여년.
하지만 지금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단출한 옷가지 몇 벌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 한 장 마련할 수 없었다.
한편,
중국 사우나로 찾아간 취재진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사우나를
찾는 손님 중 60%가 한국인! 게다가 한달 이상 머무는 사람도 많다는데…
민박집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 나중에 밀린 민박비를 꼬옥 갚겠다며
대신 맡기고 간 주민등록증과 차키 등도 다수.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거리에 남게 된 한국기업가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강제철거,
저항 그리고 폭행. 하루아침에 모두 헐려버린 꿈!
“13년
동안 인생의 전부였던 내 공장, 이곳에서 살아서 나갈 생각 없습니다.”
2008년
1월 30일 새벽 5시 40분. 어슴푸레한 어둠을 뚫고 무장한 강제철거반들과
대형 포크레인이 나타났다! 한국 사장과 직원들은 100여발의 폭죽을
터뜨리며 거세게 저항했지만 결국 정문 철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포크레인과
400여명의 철거반에 밀려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13년 간 하루도 쉬지
않고 애지중지 키워온 공장을 내주고 말았다.
저항
도중 2번의 실신! 일방적인 폭행, 그리고 억울한 눈물!
세계
2위의 지퍼 생산기업 청도 YBS 공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났던 것일까?

날로
변화하는 거대 글로벌시장 중국, 그 속에 우리 한국기업가들
3번
이상 연속계약이면 평생고용?
퇴직
시에는 경제 보상금을 모두 지급?
매년
10% 이상의 인건비 상승과 열악해진 경영환경으로 허덕이던 한국기업들에게
내려진 또 하나의 철퇴, 노동계약법! 2008년부터 시행된 노동계약법에
따르면 10년 이상 근무자와 혹은 세 차례 연속 근로 계약을 맺는 노동자는
평생고용을 해야 하고 퇴직 시 경제 보상금 지불은 물론 사내규칙을
만들 때에도 공회(근로자 대표)와 협의해야 한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그동안 중국의 발전을 도맡아 왔던 노동집약형 산업을 외면하고
고부가가치 하이테크 산업 육성으로 돌아서고 있는 속에서 중국진출
한국기업 대부분이 사양산업인 노동집약형 임가공무역 업체인 상황!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타고 넘을 것인가?
무단철수?!
가해자라는 이름으로 외면당했던 그들의 속사정
“들어올
때는 VIP, 나갈 때는 거지입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무역액 중 50%를 차지하는 청도.
지난
2007년 무단철수한 외국기업중 상당수가 한국기업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한바탕 난리를 겪었던 곳이다.
하지만
제작진이 만난 기업가들은 무단철수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정상청산이 어려운 이유!
과연
그들은 왜 무단철수를 해야 했을까?
게다가
과장된 무단 철수 보도로 인해 그동안 통용되었던 외상거래가 중단되고
급기야는 한국인들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폭력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 그들의 속사정을 들어본다.
중국
진출 성공기업이 전해주는 희망 메시지!
“처음에는
말도 안 통하고 너무 힘들었죠. 혼자 울기도 했어요.”
“한국사람
사고방식이 아닌 중국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죠.”
이러한
어려운 현지 상황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한국기업들이
있다! 바로 중국 진출 14년차인 도금업체 ‘골든벨’ 이덕호 사장과
2대째 기업을 이어받아 경영하고 있는 액세서리 업체 ‘청도다산’의
윤대영 사장이 바로 이들. 10여년 전 처음 중국에 진출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두 기업이 말하는 중국에서의 성공 노하우!
중국
내수시장 공략과 중국 근로자들과의 노사관계를 다지기 위한 그들만의
비법은? 두 기업의 남다른 노력과 성공비결을 통해 중국 진출의 청사진을
그려본다.


아직
포기할 수 없다! 재기를 향한 그들의 발걸음
| “언제든지
기회는 있잖아요. 전 언젠가는 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어요.
앞으로
10년은 더 열심히 할 겁니다.”
“항상
준비할 거예요. 이렇게 쉽게 포기 할 수 없죠. 지켜봐 주세요!”
“지금은
어렵지만 더 노력해서 나중에 다시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걸어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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