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섭 회장은 최고령자다.
70세. 벽산엔지니어링, 한아 엔지니어링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해군 장교출신으로 항만 기술자다. 큰딸은 코넬대 출신으로 연세대 교수고 두 아들 역시 하버드와 컬럼비아 대에서 MBA를 했다.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을 얻고자 출가를 결심했다.|

한 달간 월정사로 출가한다는 내 말에 친구들이 펄쩍 뛰며 놀랬다. 한편 평소의 내 불교에 대한 관심과 서가에 늘어나는 불교 서적을 보아 왔던 가족들은 의외로 담담히 내 결심을 받아 들여 주었다. 사실 나의 이번 출가는 가출성 동기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7월 말에 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은퇴할 결심이 서자 자연히 무슨 일을 하며 시간을 요리할까 걱정이 안되는 게 아니었다.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세태에 칠순까지 손 놓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행운이었고 이제야말로 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며 여생을 즐기며 살 때라는 막연한 생각뿐 구체적 계획 같은 것 없이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던 중 이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개설의 소식에 눈이 번쩍 띄었다.
일손을 놓고 은퇴하는 마당에 일상을 바꾸는 획기적 전환의 계기도 되고, 평소 간접 체험의 공부만 해오던 불교를 절집에서 직접 수행을 통하여 몸으로 부딪쳐 체험해보고자 하는 욕심과, 속세를 잠시 떠나 잡사(v)를 접어두고 살아온 길을 되돌아 보며 앞일도 마름할 더 없을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입학 자격에 40세 이하라는 연령 제한이 있어 실망하고 주저앉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인지라 전화를 걸어 특례로 받아 줄 것은 탄원하였던 바 인터넷으로 신청이나 해보세요... 하는 대답까지를 얻어 냈다.
그리고는 신청서의 출가동기 난을 내 불교에 대한 부풀린 열정으로 채운 다음 그 동안 독서와 불교방송 청취등을 통한 교학공부를 수행을 통하여 체험할 기회를 원하며 건강하고 체력 왕성하여 수행에 자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결과를 반신반의하고 있던 중 뜻밖에도 합격 통지가 온 것이다.

월정사에는 전에도 여러번 왔었다. 오대산 비로봉 등산길이나 설악산 오가는 길에도 들려서 그 때마다 탄허 큰 스님의 웅호한 선묵 현판의 멋에 취해서 발을 떼지 못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 무슨 백천만겁의 인연이 닿아서 이 절집에 와서 몸을 의탁하고 한 달이나 지낼 기회가 올 줄이야 생각이나 해 보았으랴.

아직 노염이 가시지 않은 9월 중순, 단기출가학교에 입학하러 오던 날 경내로 들어가는 금강교를 건널 때 금강연으로 떨어져 흐르는 오대천 물 소리는 참으로 시원해서 울울 한 전나무 숲에 싸인 절 마당에 들어서자 그 향기와 물 소리가 어우러져 선기를 느끼게 했다.

나를 여기까지 배웅하고 돌아가는 두 친구들이 젊은이들한테 지지 말고 잘 하라고 말할 때 솔직히 일말의 불안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엄격한 갈마의 절차를 거칠 때 스님들의 질문도 내 체력과 건강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었으나 끝으로 주지스님으로부터 연장자로서 타 행자의 모범이 되도록 잘 하라는 말씀을 듣고서야 입학이 허가된 것을 확인하고 안심과 더불어 결의도 굳혔다.

삭발수계 후 행자복으로 갈아입고 나자 본격적으로 행자의 삶이 시작되어 새벽 3시 반에 기상하여 밤 9시에 취침까지 대개 다음과 같은 꽉 짜여진 일과가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