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사냥꾼,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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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규,2005-09-30

 

하늘의 사냥꾼, 잠자리

 

우리가 어렸을 때 암컷 잠자리를 실에 매달아 돌리면 수컷이 날아들고 이를 잽싸게 잡으며 놀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그 잠자리가 전 세계에 걸쳐 6,000 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100 여 종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가장 큰 종류는 15cm를 넘고 가장 작은 종류는 1.5cm에 불과한 것도 있다. 잠자리는 유충과 성충이 강한 턱을 갖고 있고 모두 포식성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는 독특한 생활상을 보이는 곤충이다.

물 속에서 사는 유충은 물고기나 다른 수서 곤충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데 이를 가리켜 ‘물 속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꼼짝 않고 있는 도마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못생긴 유충이 작은 요정과 같은 잠자리로 탈바꿈하면 곤충세계의 용처럼 하늘을 나르며 곤충들의 사냥꾼으로서 살게 된다. 잠자리는 유충 및 성충 시기에 파리나 모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음으로써 사람에게는 익충으로 여겨지지만 왕잠자리나 부채장수잠자리와 같은 대형 종류의 유충은 올챙이나 물고기의 치어까지 포식함으로써 양어장 등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잠자리 가운데서 제일 먼저 나타나는 종은 바로 쇠측범잠자리이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에서 서식하는데 4월 10일경 전남 구례에서 이 녀석의 우화장면을 찍는 중에 개미의 공격을 받아 개미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곤충을 먹이로 하는 잠자리도 결국 같은 곤충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왕잠자리 유충은 연못이나 저수지의 물 속에서 사는데 주로 영종도에 있는 저수지와 광릉의 봉선사에 있는 연못에서 촬영하였다. 물 속에서 가장 만만치 않은 포식자 중의 하나인 왕잠자리 유충은 꼼짝 않고 먹잇감(작은 물고기, 올챙이 등)이 가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먹잇감이 가까이 다가오면 뛰어난 눈으로 사냥거리를 가늠한 후 결정적인 순간 아랫입술을 쭉 뻗어 먹이를 낚아챈다. 이런 사냥 장면들은 수조에서 촬영을 했는데 유리의 반사를 고려해 밤에만 촬영하였다. 녀석은 우화 할 날이 다가오자 물 밖 호흡을 위한 적응단계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오랜 시간 나와 있기도 한다. 그러다가 5월 어느 날 새벽 3시경 물 밖으로 기어 나와 우화를 시작했다. 우화시간은 3시간 여, 아침이 되어서야 왕잠자리는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환경부 보호종인 꼬마잠자리는 그 크기가 1.5cm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잠자리이다. 전남 곡성에서 촬영했는데 산골 휴경 논에서 살고 있었다. 꼬마잠자리는 자기의 텃세 구역에 앉아 있다가 다른 수컷이 오면 사납게 쫓아내는데 그 동작이 너무 빠르기 때문에 촬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결국 카메라에 와이드렌즈를 달고 앵글이 하늘이 향하는 위치에서 촬영해 꼬마잠자리의 텃세 싸움을 멋지게 잡아낼 수 있었다.

초여름이 되자 많은 종류의 잠자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잠자리는 우화하여 성충이 되면 곧 짝짓기를 하고 짝짓기가 끝나자마자 산란을 한다. 그 중에서 『큰밀잠자리』와 『밀잠자리』『왕잠자리』들은 암컷이 알을 낳는 동안 바로 위에서 비행하며 경호를 하는데(경호산란), 여러 마리의 수컷들이 알 낳는 암컷을 차지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사정없이 달려든다.

이들의 경호산란은 정말 철저하다. 알 낳는 암컷의 바로 위를 날면서 물샐틈없이 경호하다가 다른 수컷이 다가오면 즉시 쫓아내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경호하기를 반복한다. 여러 마리의 수컷들이 공격해오면 재빨리 암컷을 낚아채어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여름의 연못은 종족 번식을 위한 잠자리들의 치열한 전쟁터다.

잠자리는 다른 곤충과 달리 앞날개와 뒷날개를 따로 움직여 날기 때문에 정지비행도 할 수 있고 나는 방향도 쉽게 바꿀 수 있다. 이런 탁월한 기능으로 먹이 사냥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 또한 잠자리는 시각의 곤충이다. 겹눈은 2만 8천 개의 홑눈으로 되어 있어서 곤충 가운데에서도 시각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왕잠자리는 암컷의 배 윗 부분이 연두색이다. 한편 왕잠자리 수컷을 잡아서 배 윗 부분의 하늘색에 호박꽃가루를 문지르면 연두색이 되는데, 이렇게 수컷을 암컷으로 변장시켜 실에 매달아 돌리면 날아다니던 수컷이 암컷인 줄 알고 짝짓기를 하기 위해 암컷에게 붙는다. 된장잠자리는 자동차의 표면이 햇빛에 반사되면 물 표면에 햇빛이 반사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차 표면에 알을 낳는다. 이런 실험 사례는 잠자리가 시각의 곤충임을 알려주는 좋은 예이다.

아주 무더운 여름철에는 고산지대로 발길을 옮겼다.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고추좀잠자리들이 여름철에는 신 정상에 모이기 때문이다. 태백의 금대봉에서 아직 미성숙한 고추좀잠자리가 헤일 수 없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촬영할 수 있었다. 이 녀석들은 수컷의 배 부분이 빨갛게 물드는 가을이 되면 산에서 내려오게 된다.

잠자리는 알 낳는 방법도 다양하다. 된장잠자리, 밀잠자리처럼 배 끝을 물에 쳐서 물 속에 알을 떨어뜨리는 종이 있는가 하면 왕잠자리는 암수가 연결된 채 암컷이 낚시 바늘같이 생긴 뾰족한 산란관을 물 속에 담그고 물 속에 있는 식물에 알을 낳는다. 깃동잠자리는 공중에서 알을 떨어뜨린다.

영종도의 한 저수지에서 왕잠자리의 산란을 촬영할 때의 일이다. 황소개구리들이 수초에 알을 낳는 왕잠자리를 잡아먹기 위해 물 속으로 잠수를 한 후 왕잠자리 바로 곁에서 떠오르며 입을 크게 벌려 왕잠자리를 잡아먹는다. 왕잠자리는 황소개구리에게 잡아먹히면서도 끈질기게 물 속에 산란관을 들이대고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14~15일의 관찰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알에서 부화하여 식물 조직 밖으로 나온 왕잠자리 유충은 허물을 쓰고 있는데 다시 허물을 벗은 왕잠자리 1령 유충은 하얗고 투명하다. 약 12시간이 지나자 까만색으로 변하는데 무척 예쁘다. 잠자리 알의 부화는 국내에서 최초의 촬영이다. 이 애벌레가 몇 번의 허물을 벗고 자라나서 내년에는 하늘의 사냥꾼인 왕잠자리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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