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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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규,2005-09-30

 

푸른 늑대

 

늑대는 개과 동물 중 가장 큰 종류이며 모든 육식동물 중 분포 범위가 가장 넓었으나 총기가 발명된 후 그 범위는 극적으로 감소하였다. 현재 야생에서 늑대를 마주칠 수 있는 곳은 유라시아 및 북아메리카 대륙의 인구 밀도가 아주 낮은 비농경지대에 국한한다. 이렇게 늑대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수많은 동물 중에서 늑대의 이미지는 그들이 서식하던 모든 지역에서 공동의 적으로 비쳐지던 흉악한 ‘악당’ 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같은 순수 수렵 민족들은 늑대의 비상한 두뇌와 신출귀몰한 사냥술 때문에 늑대를 숭배했지만 그것도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전까지로 국한되었다. 유럽인들은 식민지 개척 시 눈에 보이는 대로 늑대를 가차없이 잡아 죽였다.

18세기 이전 영국의 최대 산업은 모직공업이었다. 모직공업은 다량의 양털을 필요로 했고 양을 훔쳐 가는 늑대는 악당과 같은 존재였다. 몽골에서의 늑대도 마찬가지다. 원주민들의 식량자원인 양을 훔쳐 가는 늑대는 보호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잡아 죽여야만 하는 해충과 같은 것이다.

한반도의 늑대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일제는 이른바 해수구제(害獸驅除)란 명목으로 한민족에게 있어서 대형 육식동물이 지닌 그 기상과 상징성을 없애기 위해 이들을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1915~16년과 1933~42년에 이르는 12년 동안 1,369 마리의 늑대가 포획되었다. 같은 시기에 호랑이 97 마리와 표범 624 마리, 곰 1039 마리도 죽어 나갔다. 한반도의 대형 육식동물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그때 이미 대를 이어갈 개체군의 역할을 상실한 것이다. 그 후 1967년 경북 영주시 상망동에서 생포된 수컷 한 마리 이후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늑대는 몽골에서 서식하는 늑대와 같은 회색 늑대이다. 그런데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징기스칸의 눈이 늑대처럼 푸른빛을 띠고 있고 또 그의 군대가 늑대가 사냥하는 것처럼 재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법을 구사할 뿐만 아니라 한번 노린 먹이는 끝까지 잡고야 마는 끈기와 매우 용맹하다고 해서 푸른 늑대군대로 일컬어지면서 푸른 늑대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늑대가 얼마나 영리한 가는 그들이 파놓은 굴을 보면 알 수 있다. 늑대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초원과 산림의 경계 지대의 경사면에 굴을 만드는데 굴 근처에는 반드시 높은 사구(砂丘)가 존재한다. 이 사구의 정상 부위로 올라가면 전망이 트여 천적의 접근을 쉽게 감지하거나 멀리 초원 아래쪽의 먹이 감을 관찰하기에 좋은 것이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한 굴에 여러 곳의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근처에 몇 개의 굴을 만들어 두어 위험이 감지되면 재빠르게 자기 새끼를 물어 다른 굴로 이동한다. 늑대들이 자기 새끼를 보호하고 지극 정성으로 기르는 모습을 보면 아무도 ‘늑대 같은 놈’이라고 욕하지 못할 것이다.

19세기까지 몽골 초원에서 늑대의 가장 중요한 먹이는 몽골 가젤이었다. 당시 몽골 가젤은 보통 200~300 마리의 무리를 지어 살았는데 겨울이 되어 평원에 눈이 쌓이면 1000마리가 넘는 대형 무리로 모이게 되고 이 근처에는 반드시 늑대가 있었다. 두 번째 야생 먹이는 초원마못(타르박)이었다. 이 녀석은 몸무게가 7kg이나 나가는 큰 설치류인데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초원에 굴을 파고 살았다. 초원마못 한 마리만 사냥해도 다 큰 늑대의 하루 먹이로 충분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이 두 종은 극히 드물어지고 말았다. 그 이유는 몽골 가젤은 풀을 둘러싸고 양떼들과 먹이 경쟁이 된다는 이유와 고기 맛이 좋은 관계로 원주민들의 사냥이 본격화됨으로써 멸종 위기로 내몰렸다. 초원마못도 고기 맛이 좋고 털가죽의 질이 좋아 예부터 유목민들의 사냥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초지를 망치고 초원마못이 파놓은 굴에 빠져 말의 발목을 부러뜨린다는 이유로 보이는 즉시 사살해 버렸다. 결국 늑대들은 양을 비롯한 유목민들이 기르는 가축에 의존해 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몽골은 11월 중순부터 겨울이 되면 한밤의 기온이 30~40도 이상 떨어진다. 새벽부터 일어나 두 세시간 정도는 장작불로 차의 엔진을 녹여야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면서 가장 큰 골치 거리였다.

몽골의 겨울은 촬영 팀뿐만 아니라 유목민에게나 가축에게도 가장 힘든 계절이다. 특히 눈이 많이 내리거나 눈 폭풍이 심한 시기에는 늙거나 병든 가축이 하나 둘 죽어나간다. 유목민에게 가축의 죽음은 마치 자식이 죽은 것처럼 비통하지만 촬영 팀은 속마음이 다르다. 은근히 가축이 죽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것을 차에다 매달아 잠복지로 끌어다 놓고 늑대를 유인해 촬영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늑대들이 쉬 잠복지로 나타나 주지를 않는다. 그런 날은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새도록 떨며 기다렸는데 드디어 새벽에 한 무리의 늑대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카메라가 작동치 않는 것이다. 너무 추워 그만 카메라가 얼어버린 것이다.

?한 겨울에 잠복 촬영 시 가장 두려운 것은 사실 추위도 배고픔도 아니다. 바로 불곰의 습격이다. 물론 그 동안 많이 사냥을 해서 그 숫자가 적지만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약 200 여km 정도 떨어진 이곳 몽고모리트 초원에는 분명 불곰이 있기 때문에 위장 텐트에서 잠복을 할 때는 꼭 사냥총을 빌려서 갖고 가야만 했다.

짧은 봄이 지나 여름에 접어들면 모기보다 더 흉폭한 흡혈귀가 나타나는데 소등애가 바로 그것이다. 이 녀석들은 그 크기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나 되는데 떼로 몰려들어 앉은자리의 피부를 뜯어내고 피를 빤다. 일단 물리면 벌에 쏘인 것처럼 얼얼하고 벌겋게 일어나는데 긁어도 긁어도 그 가려움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 녀석들은 철수할 때도 차를 따라 날아와 텐트까지 쫓아 들어와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기록된 푸른늑대를 보면서 ‘Cry Of The Wolf'의 작가가 가장 처음 늑대를 멸종시킨 영국의 어느 곳에 아직도 마지막 늑대가 생존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처럼 우리나라 어딘가에 아직도 늑대가 생존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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