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ㆍ본ㆍ은ㆍ있ㆍ다"
「천황의 나라 일본」 연출 PD의
말
오는 8월 7일(1부), 8월 8일(2, 3부), 8월 14일(4부), 8월 15일(5부)에
방송되는 "광복 60주년 특별 기획 - 천황의 나라 일본"의 담당 연출자인 이채훈 PD가 <MBC 가이드>에 기고한
글이다.
일본은 먼 나라였다. 처음 마주친 일본의 모습은 당혹스러웠다.
신년참하에 나온 아키히토 천황은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고 했다. 히틀러의 아들이 침략전쟁에 대해 아무 반성도 없이 ‘세계 평화’를 입에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야스쿠니 신사에서 마주친 노인들은 “100년 전 일본이 러시아와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한국이 안전할 수 있었다”며
일본인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구열강의 침략만 침략이고 일본의 침략은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이
엄청난 인식의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나 역시 일본은 가까운 나라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왜국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하게 교류하고 갈등하는 관계였다. 나당 연합군에게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 왜국 함대 300척이
백촌강(지금의 금강 하구)에서 백제를 도와 싸우다가 전멸당한 일, 삼국 통일 직후 나당 연합군이 쳐들어올까봐 공포에 사로잡혀 각처에 성을 짓고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 체제를 정비한 일, 통일신라 ㆍ 고려 ㆍ 조선 시대에도 끊임없이 중국과 한반도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 등을 취재 기간에야 처음 알게 됐다.
일본에 대한 이러한 무지는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축구 경기에서 다른
나라한테는 져도 괜찮지만 일본에게는 꼭 이겨야만 했다. 독도 문제 등 우리를 자극하는 행위가 불거져 나오면 욕설부터 튀어나왔다. 왜?
‘쪽바리’니까...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광복 직후 이승만 정권은 국민의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했고, 역사 교과서에서 한일 교류사에 대한
내용을 아예 싣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은 일본과 경제 교류를 전면적으로 재개하면서도 국민에게는 쉬쉬하는 태도를 취했다. 몇 년 전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잘 팔린 것은 화끈한 제목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싫든 좋든 일본은 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는 동안 세계 제2의 경제강국 일본은 우리집 안방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편견없이 일본을 이해해야 한다. 감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감정만으로는 변화하는 세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광복 60년이 되는 올해는 우리나라 방송의 광복절 특집 프로그램도
하나의 획을 긋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민 지배 피해자로서 갖고 있는 민족주의를 최대한 억누르고 일본의 본질을 냉정하게 해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일본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천황’, 그리고 ‘천황제’를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일본인 스스로
말하도록 하자는 것으로 프로그램 컨셉트를 정했다.
천황제란 무엇인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손자 니니기미코토가 3종신기를
갖고 하늘에서 내려왔고(천손강림), 그 손자 진무천황이 기원전 660년 즉위한 이래 지금까지 125대의 천황이 일본을 다스려 왔으며(만세일계),
신의 직계 자손인 천황은 일본인들의 마음과 일체이므로 일본인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며 결국 세계를 지배할 사명을 갖고 있다(팔굉일우)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웃나라에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로 이어졌고, 침략을 합리화하는 이념으로 작용했고, 급기야 2천만명의 아시아인과
300만명의 일본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류사 최대의 비극을 낳았다.
2차 대전 이후 천황은 ‘인간선언’을 했고, 황실은 좀더 대중적이고
친근한 ‘열린 황실’을 지향하고 있지만 천황을 아라히토카미(현인신)으로 보는 전쟁 전의 의식은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의 내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지금, 이러한 천황제의 향방은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현실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그램 제작에는 적지 않은 난관이 있었다. 황실은 일체 접근이
불가능했다. 외국 특파원에게 공개되는 신년참하와 천황 생일참하만 곽동국 특파원이 취재를 담당해서 촬영했을 뿐, 천황의 모든 활동에 대해서는
“외국 언론에게 공개한 선례가 없다”는 궁내청의 답변이었다. 평범한 일본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내면화된 천황의 모습을 그리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궁내청의 협조 없이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취재에 착수한 직후 독도 문제와 교과서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평범한 일본인들마저 이 프로그램을 경계하는 기미가 역력해졌다. 미리 섭외해 놓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취재를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애당초 ‘한국 미디어 취재 불가’라고 행사 현장에 한글로 고지한 경우도 있었다.
전쟁과 같은 촬영을 가까스로 마치고 구성을 재정비했다. 일본인들 스스로
털어 놓는 생각과 현장들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한일관계의 특수성과 국민정서의 민감성 때문에 지금까지 화면상에서 별로 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천황가의 생활상, 국가 신도와 관련된 제의나 축제, 천황이 참석하는 각종 행사 등이 풍부하게 소개된다는 점에서, 오늘의 일본을
피부로 생생히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고개를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