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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프린스 1호점>│사랑은 라떼를 타고

남장한 윤은혜는 어떤 모습일까?

짧은 머리의 남장을 하고 출연한다고 들었던 윤은혜는 뜻밖에 긴 머리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계단을 내려왔다. 현재 6회까지 촬영이 진행된 상태에서 모자란 부분을 추가 촬영하는 날,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현장에서 만난 윤은혜는 인형 같은 외모로 이선균 앞에서 쑥스럽게 서 있었다. 강남의 모 의상실, 밖이 섭씨 30도를 오가는 무더운 날씨라지만 실내라고 별 다르지 않았다. 촬영 중에는 소음 때문에 에어컨을 가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곳 실내에는 전면에 거울이 부착되어 카메라가 돌아갈 때마다 스태프들은 넓은 실내의 한 구석에 수해민처럼 몰려 있어야 했다. 하지만 촬영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윤은혜와 이선균의 목소리 사이로 이윤정 감독의 ‘자칭’ 마녀웃음이 들리기도 한다.

이윤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어느 커피 전문점을 배경으로 하는 청춘 드라마다. 선머슴같은 외모와 성격을 가진 고은찬(윤은혜)은 가정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자 행세를 하는 인물로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사장인 최한결(공유)과 그의 사촌 형 최한성(이선균), 그리고 독신 여성 화가인 한유주(채정안)가 서로 얽힌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로 원작 소설의 인기와 이윤정 감독의 연출로 주목받고 있다. <태릉선수촌>으로 멜로와 청춘드라마의 가장 이상적인 결합을 보여준 이윤정 감독은 현장을 어떻게 조율할까. 스탭들은 모두 “훌륭하다”, “편안하다”, “멋지다” 등의 말로 이윤정 감독을 설명한다. 그것은 으레 자신의 팀을 이끌고 있는 수장에 대한 예의에 의한 표현이 아니라 그들의 진심이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새벽이고 밤이고 촬영을 강행해야하는 드라마 제작팀원들이 덥고 지치고 힘든 얼굴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현장 분위기는 감독을 따라간다’는 말대로, 과연.

이선균은 여기서 <하얀거탑>에서 포르말린 냄새가 날 것 같던 최도영 교수의 이미지를 벗은 대신 깔끔한 검은 수트를 차려입은 댄디한 모습을 선보인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검은 수트는 부잣집 자제라는 설정과 꽤 잘 어울린다. 흐트러진 머리나 간단한 소품을 옮기는 정도의 일은 직접 해내기도 하고, 스탭들과 스스럼없이 호형호제하는 배우. “스타 같지 않은 배우”, “솔직하고 털털한 형” 등이 그에 대한 현장 스탭들의 설명이다. 이 날 촬영은 여장을 한 은찬을 보고 한성이 놀라는 장면. 농담 같은 장난이 은찬을 남자로 알고 있는 한성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남기는 순간이다. 사실 사람의 마음이 어떤 사람을 향해 떨리는 순간은 매뉴얼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런 뜻밖의 순간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 그 순간을 잡아내는 이윤정 감독의 표정이 진지하다. 은찬이 넘어지는 순간이 어색해서 다시 찍고, 은찬을 들어올리는 한성의 포즈가 어설퍼서 다시 찍고. 같은 연기가 계속될 때마다 배우들도 어색한지, 민망한지 연신 웃고 또 웃는다. 이선균은 짐짓 허리를 손으로 툭툭치기도 하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의상실 촬영은 점심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사장님, 에어컨 차를 보내주세요!

강남구 한복판에 금천구 마을버스가 서 있다. 은찬이 버스에 앉아 한결 때문에 울적해하는 장면을 위해 대여한 마을버스. 하루 대여료는 30만원이다. 좁은 버스 안에 스탭들과 승객으로 출연하는 배우들, 그리고 카메라와 모니터까지 들어가자 금새 가득 찬다. 한 바퀴 돌고 오는 거냐고 묻자 시내를 돌면서 촬영을 하고 다음 촬영지로 바로 이동한다고 한다. 그 동안 다른 스태프들은 잠깐의 휴식시간. 울적해질 준비를 마친 은찬을 싣고 마을버스가 출발하자 남은 스태프들은 서둘러 짐을 챙겨 차에 싣는다. 자리가 없어 마을버스에 타지 못한 관계로 스태프들을 따라 다음 촬영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유주의 집은 평창동에 있다. 그녀는 8년 동안 한성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다가 불현듯 뉴욕으로 떠난 인물. 뉴욕에서 미술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녀에게 한성은 여전히 좋은 친구였고, 한성에게 유주는 아픈 상처였다. 고급 저택들과 빌라들이 늘어선 동네에서 스태프들은 촬영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내가 눕는다, 오는 차 다 막을게!” 한 스태프가 외치지만 오후의 주택가 골목을 오가는 차량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간단한 촬영이었지만 비좁은 계단에 연출팀이 모여 있어야 하고, 강렬한 햇빛이 벽에 만드는 그림자 때문에 조명팀과 연출팀은 그림자를 막고 자리를 잡느라 분주하다. 다음 장면은 한성이 유주의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 약간 격한 감정이 표현되어야 하는데 마침 이선균이 몰고 온 차의 문이 빌라 현관에 살짝 부딪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리자 스태프 일동은 돌연 긴장상태. 그래도 카메라는 돌아가고 오케이 사인이 난다. 카메라가 멈추자마자 스태프들은 이선균을 지나쳐 차로 달려간다. “차 문 괜찮아? 아, 다행이다.”그러는 사이, 이윤정 감독이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잠깐 나갔다 온다. “사장님이 뭐 어려운 거 없냐 하시길래 없다고 그랬어.” 이 말에 스태프들은 일제히 “많은데~”라고 우는 소리를 낸다. “에어컨 차만 한 대 있으면 되요!” 와하하 웃는 소리에 돌아보니 다들 얼굴이며 몸이 땀으로 젖어있다.

홍대 앞 커피 프린스 1호점은 공사중

커피 프린스 1호점은 홍대 앞에 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 통채로 빌린 카페는 리모델링을 하느라 영업을 쉬고 있다. 외관과 실내 풍경이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하게 바뀐 이 곳에서 은찬은 바리스타로 성장한다. 게다가 커피가 바로, 주인공 아닌 주인공이다보니 커피 브랜딩과 로스팅, 라떼 아트에 대해 조언과 교육을 맡은 별도의 전문가도 촬영 현장에서 대기 중이다. 바리스타 아카데미인 커피 MBA의 이동진 대표와 직원들이 스태프들을 도와 소품을 준비한다. “윤은혜씨가 제일 잘해요. 빨리 배우고 감각도 좋은 것 같아요. 얼마 전엔 라떼 아트도 했거든요. 하하.” 이동진 대표의 말이다.

오늘의 촬영은 드라마의 메인 타이틀. 애니메이션이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콘티에 따라 정확하게 촬영해야한다. 수많은 컷과 컷을 짜깁기해야 하는 타이틀이라 꽤 오래 걸린다. 컵 하나를 찍더라도 카메라와 조명이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실내에서 카메라가 동선을 잡을 때마다 탁자와 의자를 이리저리 옮기는 스태프들. 하지만 실외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실내의 에어컨을 가동할 수 있으니 오케이. 커피 프린스의 홍사장으로 출연하는 김창완은 자신의 촬영이 끝난 뒤에도 윤은혜 옆에서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겨준다. 잠깐 쉬는 시간에는 소품으로 사용된 책을 들고 소파에 앉아 있으니 영락없이 인상좋고 사람좋아 보이는 (그리고 왠지 월급도 많이 주실 것 같은) 사장님이다. 이후 촬영 일정을 물어보니 아직 덜 지어진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벽화를 그리는 장면을 밤에 찍을 예정이라고 한다. 섭외 장소의 공사는 다음 주 정도에 완료되고,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배경으로 하는 본격적인 커피 이야기는 그때부터 촬영될 예정. 커피 전문점에서 은찬과 한결이 겪게 될 청춘의 폭풍같은 시간들은 과연 어떻게 그려질까. 7월 2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듯. 아, 얼마 안 남았군.

(글) 차우진 lazicat@t-fac.com

(사진) 백가현 beck@t-fac.com

(사진) 이원우 mcqueen@t-f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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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