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프린스 1호점>은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재벌가 자손에 여유로운 성격의 최한성 역을 맡으면서 모처럼 부잣집 한량 역할을 하게 되어 기쁘다고 했는데. (웃음)

이선균 : 일단 이번 주 방영될 11, 12회는 격정 멜로가 될 것 같다. (웃음) 유주(채정안)가 한성을 떠나겠다고 하고, 다른 커플들에게도 사건이 많다. 하지만 촬영 환경은 너무 좋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성북동 쪽인데 극 중에서 한성이 사는 집이 평소에 내가 산책 다니는 길에 있어서 친근하고 편하고, 현장 분위기도 좋아서 행복하다.

: 처음에는 이선균이라는 배우의 이미지와 최한성이라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동화될지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얘기한 것처럼, 새벽에 놀이터에서 맥주 마시며 배드민턴 치는 걸 좋아하는 이선균과 큰 저택에 혼자 살며 비싼 개 끌고 산책 다니는 최한성 사이의 접점을 어떻게 찾으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이선균 : 배우가 어떤 캐릭터와 접점을 찾으려면 내가 그 역할에 맞추거나 그 역할을 나에게 가져오거나 해야 하는데, 지금 외형적인 부분은 설정에서 충분히 배경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최한성은 큰 개와 좋은 집과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어차피 남들과 비슷한 오감과 희노애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편하게 연기하려고 한다. 단지 내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한결(공유)과 은찬(윤은혜)은 일상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비해 유주와 한성은 요점정리처럼 감정들이 툭툭 점프해서 갈 때가 많다는 거다. 그래서 그 감정을 어떻게 끊기지 않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

: <커피프린스 1호점>은 2005년 <태릉선수촌>을 함께 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이윤정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이라는 면에서도 기대를 모았는데,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선균 : 처음에 나에게 직접 전화가 왔다. 진형욱 감독님과 <드라마시티 - 연애>라는 작품을 한 뒤였는데 그걸 굉장히 좋게 보셨다고, 이번에 4부작을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셨다. 마침 나도 <베스트극장 - 매직파워알콜>을 보고 감독이 누구인지 찾아봤을 정도로 팬이었기 때문에 고마웠다. 그러다가 처음 만난 건 대본 리딩할 때였는데 기대했던 것처럼 솔직하고 좋은 사람이었고, 소녀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유의 호탕한 웃음에서 진솔함이 너무 묻어났다. 대화하면 그대로 믿음이 가는 사람. 그래서 첫날 배우 네 명과 감독님이 바로 포장마차 가서 술 마시다 감독님은 새벽에 실려가고. (웃음) 그렇게 <태릉선수촌>이 시작됐다.

“이윤정 감독에게는 120%의 믿음이 있다”

: 그러면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다시 만난 계기는 무엇인가.

이선균 : <하얀거탑> 후반부 법정 씬을 찍을 때 현장에 이윤정 감독이 놀러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다음 작품에 내가 할 만한 역할이 하나 있다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야 감독님이 불러주시면 언제나 땡큐죠” 그랬다. 다신 안 불러줄 줄 알았는데. (웃음) 좋은 팀과 좋은 작품을 한다는 게 배우에게 얼마나 큰 행운이고 즐거움인지 이미 한번 경험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고마웠다. 120%의 믿음이 있었다고 할까.

: <커피프린스 1호점> 초반에 극 중 여자친구인 한유주와 통화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최한성이라는 남자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 장면이었던 것 같다.

이선균 : 처음 대본이 나왔을 때는 “통화를 하면서 피아노로 동요 ‘노을’을 치다가 재즈 버전으로 편곡한 다음 락 버전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피아노를 못 치니까, 아무리 급조해서 코드를 외워 친다고 해도 명색이 음악감독인데 그게 어색하면 얼마나 웃긴가. 그래서 감독님한테 “어쩌라구?” 그랬더니 또 “우하하하!”하고 웃으면서 알아서 해보란 거다. (웃음)

그래서 후배한테 일단 피아노를 빌리긴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노을’을 그렇게 부르는 건 좀 재미가 없을 것 같고, 어쨌든 내가 피아노를 못 치기 때문에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거라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태릉선수촌> 때도 같이 일했던 음악감독 티어라이너에게 의논을 하다가 결국 라이너가 ‘바다 여행’으로 MR을 만들어줬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계속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거였는데 아무래도 모양이 안 나서, 현장에서 감독님과 얘기해 집 안을 돌아다니며 대걸레 같은 걸 써서 한 거다. 다행히 감독님이 예쁘게 찍어주시고 음악감독이 노래도 잘 만져 준 덕분에 그만큼 나온 것 같다.

: 팀웍이 좋기 때문에 배우와 감독과 음악감독이 자기 영역에서 의견을 내고 결과로 만드는 작업이 가능했던 것 같다.

이선균 : 그렇다. 나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고민을 많이 한다. 내가 표현을 못하는건 연습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가짜로 하는 건 싫으니까. 재주가 없기 때문에 대안을 찾는 거고, 그렇게 참여할 수 있는 현장을 좋아한다.

“끝까지 내게 넘어오지 않은 최도영에게 미안했다”

: <드라마시티-연애>의 고시생 진구, <태릉선수촌>의 수영선수 동경, <도망자 이두용>의 노철기 형사, <커피프린스 1호점>의 최한성은 각각의 캐릭터가 다르면서도 기본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이선균이라는 배우 자체가 갖는 느낌이기도 한 것 같은데.

이선균 : 원래 별로 욕심이 없는 성격이다. 큰 계획도 없고, ‘인생 뭐 있나?’하는 생각으로 사는 편인데 신인 때는 마음이 급하고 여유가 없었다. 맨날 누구 친구, 까부는 캐릭터 같은 걸 하면서 오버하고 세게 쳐주는 연기만 하게 되는 게 좀 싫었다. <드라마시티-연애>를 하면서 그런 부분을 버리게 됐고, 단막극 작업을 계속 하면서 여유를 얻었다. 몇 년 전부터는 연기할 때 어떤 순간이 오기까지 좀 기다린다. 물론 기다린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한 발짝 기다려보자, 그래서 호흡이 좀 길다. 편집되는 부분도 많고. (웃음) 하지만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 그런 면이 작품 안에서 표현되기 힘들었던 게 <하얀거탑>이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는 꼭 넘어야 하는 산이었을 텐데, 캐릭터가 작품 안에서 현실에 계속 부딪히며 자기 페이스를 잃게 되는 부분도 있지 않았나.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선균 : <하얀거탑>에 처음 들어갈 때는 건강도 좀 안 좋고 연기하기가 왠지 힘들 때였다. 안판석 감독님처럼 좋은 분이 나에게 이런 역할을 주셨고, 이 작품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아는데 나는 왜 지금 이렇게 멍한 기분일까. 촬영이 다가오는 게 마치 시험 기간은 다가오는데 공부를 안 한 것 같은 기분. 그러다 촬영에 들어갔는데, 4회까지 찍는 게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정말 좋은 선수와 좋은 감독이 있는 야구팀에 들어가 5번 타자가 됐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3할 이상을 치는 와중에 나 혼자 1할 7푼 정도 치고 있는 거다. 이게 스포츠라면 바로 2군으로 내려갈 텐데 나는 20부까지 가야 하니까 너무 부담되고 겁이 났다. 감독님께서 얼마나 후회하실까 싶어 죄송하고 어렵고, 팀원 모두에게 미안했다. 후반부에는 겨우 조금 나아졌지만 끝까지 최도영이 나한테 안 넘어온다는 느낌이었다. 끝나고 나서도 최도영에게 정말 미안했다. 나 같은 배우를 만나 빛을 보지 못한 것 같아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역할도, 많이 고민하고 자책하게 만든 작품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좋은 공부가 됐고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후회는 전혀 안 된다. 그런 기회가 왔던 게 고맙고, <하얀거탑>이라는 작품 자체는 정말 자랑스럽다.

: 다시 최도영 역할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이선균 : 그 때보단 잘할 것 같다. (웃음)

“보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아도 어딘가에 있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하고 2002년 시트콤 <연인들>로 TV 활동을 시작했다. 방송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나.

이선균 :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웃음) 1년 동안 그랬다. 졸업하고 운좋게 뮤지컬을 하게 됐는데 또 운 좋게 송창의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주위에서 모두 좋은 기회니까 꼭 하라고 하길래 아무 것도 모른 채 시작을 했다. 그 때 여의도에 처음 간 거였다. 그런데 아는 사람도 없어 외롭고, 불이 들어오면 연기를 하라는데 호흡 맞추기도 힘들고, 매니저도 없고, 두 달 반 동안 스태프들과 같이 버스 타고, 남의 차 얻어 탈 때도 있었다. 집이 남양주에 있을 때인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버지께 얘기해서 36개월 할부로 경차를 한 대 뽑았다. 그런데 운전도 미숙하고 길도 모르겠고, 방송국 갈 때마다 경비원이 어디 가냐 뭐하는 사람이냐며 1년 내내 붙잡고...한동안 인정도 못 받고, 그러다보니 주눅들고, 친구들은 다 대학로에서 연극하는데 나만 괜히 TV로 와서 타협한 것 같기도 하고. 전학 가서 왕따 당하는 기분? (웃음) ‘이러다 끝나는 거구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제일 힘들 때는, 역할이 작은 것 뿐인데 연기자로서 작아진다는 생각이 들 때였던 것 같다.

: 그렇게 시작해서 차근차근 비중을 늘려왔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이선균이라는 배우에 대해 대중 스타와는 좀 다른 느낌으로 신뢰를 보내는 것 같다.

이선균 : 요즘에는 나처럼 시작해서 계속 일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정말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웃음) 하지만 남들이 ‘6년간의 무명’이라고 지금 말하는 그 시간에도 나는 왜 안 뜰까, 앞으로 어떤 위치에 꼭 올라가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긴 했지만 아무 것도 없는 내게 역할이 맡겨지고 일이 끊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연기하는 게 좋았고, 어차피 욕심낸다고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후배들한테도 “네가 하고 싶으면 계속 해라. 보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아도 어딘가에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아진다”고 얘기한다. 나도 그렇게 하다 보니 좋은 연이 생겼고, 그 연이 또 다른 좋은 연으로 닿았고, 올해도 운이 좋아 좋은 작품들을 만난 거니까.

“대출금 갚고 나니 여유가 좀 생긴다”

: 엄태웅씨가 <마왕> 초반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일이 없어질까 봐 두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느 정도 입지가 탄탄한 배우들이 그런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의외였는데 지금 사는 데 있어서 그런 요소가 있나.

이선균 : 모든 배우들은 다 그런 고민을 갖고 있다. 선택을 받는 입장이니까 이번 작품의 결과에 따라 시나리오가 들어오고, 주연 배우는 또 그 나름대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 이 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 흥행에 대한 부담은 좀 안 느끼고 싶고, 부끄럽지 않은 작업을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좋다. 어차피 결과는 운이 반이라고 생각하니까.하지만 다음 일이 결정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배우들은 많다. 물질적인 문제도 있지만 몇 달 동안 작품에 몰두하다가 갑자기 쉬게 되면 공황 상태가 되니까 여유를 그렇게 즐기지 못한다. 한 1주일 쉬고 나면 뭐할지 고민하고. 사실 나는 쉬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 그런데 별로 안 쉬고 일하지 않았나.

이선균 : 난 정말로 여유가 없었다. 집에서 독립을 했는데 대출금을 갚아야 해서. 이번에 갚고 나니까 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지금은 약간 거만해졌다고도 하는데 사실 내 꿈은 동남아 같은 데서 카페 하다가 인터넷으로 대본 보내주면 그거 보고 ‘어, 갈게.’하는 거라. (웃음)

: 사람들이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좋아하는 것은 연기자이면서도 대출금 같은 고민을 하는 게 현실감 있고 친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선균 : 사실 난 유명한 배우들을 보면 동료 배우로 안 보이고 연예인으로 보여서 불편하고 어렵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나는 그런 면이 없어 보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좀 더 막 대하고. (웃음)

: 얼마 전 영화 <우리동네> 촬영을 마쳤는데 <커피프린스 1호점>까지 끝내고 난 뒤의 계획이 있나.

이선균 : 홍상수 감독님 작품에 잠깐 단역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다. 프랑스 올 로케이션이라고 해서 여행 겸 가려고 한다. 그 밖에는 아직 결정을 못했다.

: <커피프린스 1호점>은 당신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가.

이선균 : 재밌지 않나? 만화같은 상황에 진심이 묻어나고 현실감이 느껴지게 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인데 역시 이윤정 감독의 힘인 것 같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나중에 내가 다시 봐도 기분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 만약 자식을 낳으면 보여주고 싶을 거다. “아빠 이런 것도 했다니까!”하면서. (웃음)

(글) 최지은 guilty@t-fac.com

(사진) 이원우 mcqueen@t-f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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