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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
MBC 드라마
기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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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타가 편히 보내드리겠습니다
2014.04.29 - 예고
이 골타가 편히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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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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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프로그램 소개
서기 1225년 (고종 12년), 몽고 사신 저고여가 압록강에서 도둑들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몽고 황제 오고타이는 이 사건을 구실로 삼아 1231년, 살리타(撒禮塔)에게 수만의 대군을 내주어 고려를 공격하게 한다. 세계의 5분의 4를 정복한 몽고와 고려가 30년간 7차에 걸쳐 피바다를 이룬 참혹한 대몽항쟁의 시작이었다. 고려는 치열하게 항전했지만 강성한 몽고에게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고 만다. 고려와 원나라는 종속관계가 되었고, 이때부터 다양한 원의 내정간섭이 시작되었다. 원은 고려 왕실의 자식들을 인질로 보내게 하고, 고려 국왕이 직접 원 황실에 내조하게 하였으며, 고려왕에게 원나라 황실의 공주를 줌으로써, 고려를 원의 부마국으로 만들었다. 더구나 원에 의한 고려에의 수탈은 가혹했으니,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환관(宦官)과 공녀(貢女)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기황후는 바로 그 공녀 출신이었다. 원나라로 끌려간 공녀들의 삶은 가혹하고 참담했다. 궁중의 시녀가 되거나 고관대작들의 첩실이 되는가 하면, 유곽에 팔려나가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망조가 깃든 힘없는 나라는 더 이상 이국땅에 끌려간 제 나라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기황후 역시 여느 공녀들처럼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운명의 질곡 속에 내던져져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강하고 명철했다. 운명은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상대였고, 고려가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다면 스스로가 지켜내야 했다. 그 기세와 지혜, 냉철한 판단과 뜨거운 열정으로 그녀는 마침내 대원제국의 지존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 우리 역사상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 여자. 무소불위의 강력한 권력을 움켜쥐고 유사 이래 가장 넓은 땅을 호령했던 전무후무한 여인... 그러나 원사(元史)나 고려사에 묘사된 기황후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봉건적인 유학의 관점으로 여성의 정치 참여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며, 더욱이 중국의 입장이라면 변방국 출신의 여인에게 지배당한 역사를 더더욱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황후의 세력을 등에 업은 오빠 기철(奇轍)형제들의 횡포도 기황후의 부정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한 몫 했다. 그러나 생몰연도조차 정확치 않은 열악한 사료를 근거로 한 위대한 인물의 족적을 예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녀는 공녀와 환관 징발을 폐지하였고, 고려를 몽고의 한 성으로 만들려는 입성론을 막아내어 고려를 송두리째 없애려는 야욕을 무위시켰다. 만약 기황후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린 중국어를 쓰며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황후에 대한 평가는 좀 더 객관적이고 주체적이어야 한다. 우리에겐 외세로부터 당했던 가슴 아픈 기억들이 있다. 몽고의 침략과 지배, 그로 인한 수탈의 역사 또한 우리에겐 굴욕과 분노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 시절, 우리가 외면했던 위대한 성공과 승리의 역사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제 700여년이 지난 오늘날, ‘기황후’를 새롭게 만나려고 한다. 그것은 상처받은 과거사에 새살을 돋게 하여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며 국제화 시대, 분단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자긍심과 용기, 희망을 주는 일이다. 또한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돌이켜 보게 하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꿈꾸게 하는, 기념비적인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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