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말 희선이가 큰일날 뻔했다. 하마터면 우리의 귀염둥이 가 화상을 단단히 입고 병원 신세를 질 뻔했다.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행히 내가 위기의 상황에서 희선이를 구했기에 망정이지. 하지만 그로 인해 내 오른쪽 눈 썹과 앞 머리카락이 홀라당 불에 타버렸다!!

오늘 우리는 말 그대로 벼랑 끝에서 촬영을 했다. 진짜 천길 낭떠러지였다. 대 형 크레인이 동원됐고, 희선이가 탄 마차를 그 크레인이 매달았다. 불이 붙은 채 달 리던 마차가 벼랑 끝에서 앞으로 고꾸라진 매우 위험한 장면이었다.

촬영 전부터 희선이한테 주의를 단단히 줬다.

"네 생명이 중요한 것이니,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힘들면 당장 뛰어나와라."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희선이는 두려움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역류된 불길이 상상 이상으로 확 올라 온 것이다. 희선이는 두려움에 얼굴을 무릎에 묻고 눈을 감고 있던 차라 위기를 느 끼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화상을 막기 위해 무릎 아래 부분에 불이 안 옮겨붙게 약 을 발랐지만 그 정도로는 소용 없는 상황이었다. 온몸에 화상을 입을 수 있는 위기 였다.

순간 내가 얼른 뛰어들어가 희선이를 잡아당겼다. 다행히 희선이는 아무런 부상 이 없이 마차에서 구출됐다. 내가 생명의 은인인 것이다.

그런데 희선이 하는 말.

"에이, 조금만 더 버티면 됐는데, 또 촬영해야 하잖아요!"

하하. 역시 희선이다웠다.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짜증 한번 안 내고 씩 씩하게 임한 것이다.

오, 그런데 내가 문제였다. 불이 올라오는 속으로 얼굴을 확 들이미는 바람에 오른쪽 눈썹과 앞 머리카락이 그만 불에 탄 것이다. 지금 내 오른쪽 눈썹은 없다!!

결국 이런 식으로 촬영을 스무 번은 더 해야 했다. 그때마다 내가 마차 옆에 대 기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우리의 희선이가 저 위험한 신을 대역 없이 소화해내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가.

희선아 역시 넌 최고의 배우다.



[2004.9.17 (금) 연합뉴스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