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무대는 지난 2일부터 방영된 MBC 주말극 ‘한강수 타령’. 김혜수는 극중 생선장수 어머니(고두심)의 맏딸 가영 역을 맡았다. 7년간 사귀어온 김석훈과 냉소적인 바람둥이 최민수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대 그리고 나’로 호흡을 맞췄던 김정수 작가와 최종수 PD가 오랜만에 뭉쳤다. 김민선이 둘째딸 나영으로 등장하고, 봉태규, 이윤지, 박한별 등 조연진도 만만치 않다. 베테랑 작가, 연출에 말그대로 초호화 캐스팅. 주말극의 연이은 부진으로 ‘드라마 왕국’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MBC가 동원가능한 인적 자원을 모두 투입한 상황이다.

부담감이 있을 법도 하지만 김혜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당당했다. 그는 “대본이 워낙 좋아 별다른 연기를 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느낌만 전달해도 만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19년 연기 경력에서 우러나온 여유였다. 김희애 주연, 김수현 극본의 KBS 주말극 ‘부모님 전상서’와의 맞대결에 대해서도 “내가 대결이 되겠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진정 상대에 대해 겁을 내는 태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가 강할수록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베테랑의 자세였다.

김혜수는 영화 ‘얼굴없는 미녀’ 홍보 기간 도중 최종수 PD를 만났다. 영화에 크게 몰입했던 터라 쉽게 드라마에 출연할 생각은 없었다. 최PD는 들고온 대본을 건네주며 딱 3시간만 정독해달라고 부탁했다. 대본을 읽은 김혜수는 즉시 출연을 결정했다. 평소 똑부러지지만 때론 비굴하기도 한 인물의 복잡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본을 보며 실제 어머니와 언니를 떠올릴 정도로 빠져있다. 김혜수는 ‘한강수 타령’을 “모든 시청자들이 꿈꾸는 정통 드라마”라고 설명한 뒤 “시청자들이 집에 일찍 들어가서 보고 싶어하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대중은 ‘연기자 김혜수’보다는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의상을 걸친 영화 시상식장의 김혜수’를 쉽게 떠올린다. 정작 영화나 드라마 속 김혜수는 노골적인 성적 매력을 풍기는 역을 맡은 적이 별로 없음에도 그렇다. 영화제 단상에 오르는 여배우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게 꾸미지만, 그중에서도 김혜수가 유독 돋보이는 체형이라는 점이 ‘원죄’였다. “강해보이지만 실제론 여리다”는 김혜수의 면모를 다시 돌아본 이는 김정수 작가. 김작가는 “‘짝’ ‘한지붕 세가족’ 때의 당당하고 밝은 김혜수 옛날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혜수 연기 인생의 한 전기였다고 할 수 있는 ‘얼굴없는 미녀’는 생각만큼의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김혜수는 “가진 능력의 한도에서 최선을 다했다”며 “쉽게 따라오기 부담스러운 영화였는데 진지하게 대해준 관객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2004.10.4 (월)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