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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수타령>으로 브라운관 컴백 김민선
매번 연기자들과 인터뷰 할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그들에게는 뭔가 남다른 게 있다. 보통 말하는 ‘끼’라는 것이다. 대기실에서는 별다를 게 없이 평범하던 사람이 카메라 앞에만 서면 무언가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에 가끔씩 깜짝 놀라곤 한다.

최근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으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컴백한 김민선에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대기실에서는 책 한 권 들지 못할 것처럼 연약해 보이고 말수도 적어 보이던 그가 카메라 앞에 서자 응축해놓은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너무나 얄미워서 사랑스러운’ 우리네 여동생이 되어 있다. 스튜디오 한켠에서 그의 드라마 녹화 모습을 지켜보며 기자는 문득 그가 가진 숨겨진 에너지의 실체를 밝혀보고 싶어졌다.

지난 2일 MBC 여의도 스튜디오. 그곳에서 한창 방송 녹화중인 김민선을 만났다. 인터뷰는 저녁 시간을 빌어 함께 식사를 하며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첫 회가 방영된다는 이유로 <한강수타령> 제작팀과 출연진이 식사를 하며 함께 방송을 보기로 하는 바람에 인터뷰는 저녁 식사를 끝마친 9시경에 이뤄졌다.

드라마 첫 회에서 만난 김민선의 모습은 인터뷰하기 싫을 만큼 얄미웠다. 엄마와 언니의 주름살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는 말썽쟁이 둘째 딸 ‘나영’. 시장에서 일하는 엄마가 부끄럽고 언니에 대한 질투심으로 가득 찬 ‘나영’의 모습은 온통 삐뚤어져 있다.

“<유리구두>의 악역 이미지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돼 이번에도 부담감이 크다”는 김민선은 “나영이가 가진 아픔이 없었다면 그는 다만 나쁜 사람이겠지만 그 안에는 사연이 숨어 있어요. 회를 거듭할수록 그 안에 담겨진 따스한 마음을 만나게 될 거예요”라고 말한다.

지난 2년간 김민선은 성숙을 위한 시련의 세월을 보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고 전 소속사와 법적 분쟁까지 벌이며 마음고생을 했다. 하지만 <한강수타령>으로 오랜만에 시청자들 앞에 선 김민선은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그 간의 상처를 털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계기였을까. 최근 김민선은 <하류인생>으로 베니스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으며 배우로서는 가장 영예로운 한 순간을 보냈다.

“외국인들이 동양 사람에 대해 배타적인 시각이라고 해서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실제 가보니 동양 여성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라고요. 드레스도 한국 정통의 색감으로 준비했는데 외국인들은 한국의 색감과 선, 그리고 여자에게 큰 관심을 보여 기분이 좋았어요.” 베니스 여행에서 특히 김민선을 들뜨게 한 것은 임권택 감독에 대한 현지의 뜨거운 반응이었다. “참가하는 행사장마다 전 세계 유명 영화인들이 임 감독님께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는데 너무 자랑스러웠어요”라는 김민선은 “특히 발음이 어려운 ‘취화선’을 우리말로 얘기하는 그들 모습에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김민선은 연예계의 마당발로 꼽힐 만큼 주위에 사람이 많다. 본인 역시 “아는 친구, 선배, 후배, 선생님들까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많다”고 얘기할 정도. 이렇게 인간관계 좋기로 유명한 그가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열애설이 없었다는 점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연예계에 아는 분들이 많은 것은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 덕분”이라는 김민선은 “사실 외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사적인 만남을 가질 만큼 친한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사생활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 편이죠”라고 말한다.

김민선이라는 배우는 그동안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왔지만 굵은 줄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편이었다.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에 조금은 중성적인 코드,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이 그만의 색깔. 하지만 실제 만난 그의 느낌은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사실은 성격이 상당히 내성적인 편이에요. 연기자 생활을 하며 많이 달라졌지만 카메라 밖에서는 여전하죠. 게다가 저는 에너지가 약한 사람이에요. 부족한 에너지를 연기에서 모두 소진해버리고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기 바빠요.” 다시 말해 아직은 남자친구를 갖기에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얘기.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연기에 대한 자심감이 더 생길 때쯤 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연기자로 본격 데뷔한 김민선은 같은 작품 출신인 박예진, 공효진 등과 함께 가장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젊은 여성 연기자로 손꼽히고 있다.

“그렇게 평가해 주신다면 너무 과분하죠. 아직은 배우로서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찾지 못했어요.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을 찾을 때까지 이 옷 저 옷 다양하게 입어보고 싶어요.” 최근 김민선의 인터뷰 기사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영화 <하류인생>을 통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됐고 이번 드라마 <한강수타령>을 통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전달하겠다는, 그렇게 해서 마음 속에 머물고 있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보내드리고 싶다는 내용이다.

이날도 김민선은 기자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그것도 매우 강한 어조로. 그 순간만큼은 인터뷰의 질의응답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기주문처럼 보였다. 여전히 어머니에 대한 상처와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김민선은 배우로서 더욱 큰 발돋움을 내딛는 것만이 어머니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키워드’임을 애써 상기시켰다

그림설명 [1]: 이종현(사진) 기자
그림설명 [2]: 드라마 '한강수타령'



[2004.10.9 (토) 일요신문 신민섭 기자]




2004-10-09(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