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 방송 작가들이 돈벌기에 혈안이 되지 않는 바에야 좋은 작품들을 만들려 한다. 하지만 방송에 등장하는 드라마들은 광고를 불러 들일만한 감각적이고 선정적인 것 일색이다. 좋은 작품 이전에 1% 시청률에 도전하는 게 목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이 대박 터지는 설정은 이제 보통이고 이를 위해 가족과 친구, 연인도 싸워 이겨야 하는 대상이다. 아니,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실제 부모는 따로 있다거나 입양을 성공의 수단으로 삼는다. 물론 새로운 그들은 부잣집 속의 구성원들이다.

이런 드라마 상황이 가능했던 이유는 IMF체제 경험과 지식 정보화 그리고 부자 신드롬이 빚어내면서 합리화되었기 때문이다. 공동체적인 연대나 인간적인 가치보다는 개인의 성공이나 부의 축적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 버렸다. 공동체 조직이나 사람 관계보다는 개인의 성공과 부가 모든 것을 지켜줄 수 있으리라는 심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간파하고 영합한 것이 방송이고 드라마였다. 어느새 개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만이 존재하고 가족 구성체도 파편화 되었다. 가족을 죽여야만 드라마가 되었다. 가족을 다룬다고 해도 가족 이기주의만이 존재하고 동네나 마을의 구성원들이 펼쳐 가는 자잘하고 따뜻한 삶은 배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이는 거꾸로 환타지 코드가 휩쓴 것은 한국 사회의 비탄력성, 비유동성을 의미한다.

자본질서의 재편과 공고화는 강자질서중심으로 사회를 굳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당장에 이땅의 젊은이들이 꿈을 이루기에 사회는 너무나 굳어졌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이로 굳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박과 만화 같은 환타지가 파고든다. 이제 환타지는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방송 드라마에도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여기에서도 주인공은 공동체나 일상의 많은 사람이 아니라 뛰어나고 멋있는 주인공만이 활개를 친다.

물론 이 주인공은 시청자 개인들과 동일시 된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환상을 심는다.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어!" 하지만 언제나 환상 이면의 현실을 알고 허탈해 한다. 다시 중독성이 강해 마약 같이 다시 강한 환상을 찾아 헤매게 한다.

김수현의 “부모님 전상서”는 파편화 된 가족이야기를 다룬 바로 앞의 "애정의 조건"에 비해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존의 김수현의 작품들은 상대방을 가학적으로 몰아붙이는 말법을 사용하면서 인기를 끌어왔다. 몰아 붙이는 쪽이 시청자와 동일시를 이루면서 시청자는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허준호를 공격하는 딸애의 말법에 아직 남아 있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김정수의 “한강수 타령”도 “엄마의 바다”와 같이 한 어머니와 딸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가족 드라마의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 다만, 홀어머니와 딸들이라는 설정은 상대적으로 모성에 대한 칼날 위를 걷는 이중성을 가지게 한다는 점을 잊을 수는 없다.

어찌되었든 개인의 성공과 부에 대한 환타지 코드만이 횡행하는 이 즈음 두 방송사에서 이런 주말 드라마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이러한 드라마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가족 이기주의가 완전히 걷혀진 것은 아니다. 어느새 드라마에서 가족은 물론 동네 사람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같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내용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개인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의 설정은 사람을 죽이고 가학적이며 배신과 음모, 로또 복권 당첨 같은 황당한 반전만이 판을 치게 한다. 가족만의 드라마도 가족만을 위한 성공이나 부의 축적을 합리화 할 위험성이 있다.

드라마의 역할은 부정적인 현실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지향점을 제공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에도 있다. 진실한 대박 드라마는 너도, 나도 하는 드라마에 있는 게 아니라 안하고 곳에 있다.

"한강수 타령"이나 "부모님 전상서"가 괜찮은 반응을 얻고 신데렐라나 트렌디 드라마가 점점 힘을 잃고 있는 것은 다음 대박은 가족과 이웃을 위한 따뜻한 드라마라는 점을 암시하기도 한다.



[2004.10.21 (목) 고뉴스 글·김헌식(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