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의 물러섬이 없던 KBS와 MBC의 주말드라마 대결에 서서히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두 베테랑 작가 김수현과 김정수를 내세운 이 대결에서 MBC가 앞서나가는 조짐을 보인다. 아직 방영 초반이지만 드라마가 두 작가의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시청자들의 반응은 작가 스타일에 대한 시청자의 기호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진화한 시청자들은 이제 말보다는 느낌으로 드라마를 시청한다.

지난주 KBS `부모님 전상서`(극본 김수현ㆍ연출 정울영)와 MBC `한강수타령`(극본 김정수ㆍ연출 최종수)의 대결은 한강수의 승리로 끝났다. 초반 시청률 부진을 딛고 대결 4회 만에 `부모님 전상서`를 넘어섰다. 사실 두 드라마는 주말드라마 공식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대가족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 마치 색색의 레고 블록처럼 조합돼 소시민의 희비애환을 담은 이야기를 펼친다. 가족이라는 틀에서 인물들의 개성은 제약받고 거기서 비롯되는 갈등들이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넉넉지 못한 살림을 벗어나려는 `한강수타령`의 나영(김민선 분)이나 철없이 자유로운 애인에게 시달리는 보수적 가정의 장남인 `부모님 전상서`의 지환(장현성 분) 같은 인물은 갈등의 중심에선 전형적인 주말극의 캐릭터다.

이처럼 스토리, 구성, 인물 그리고 작가의 명성 등 모든 것이 비슷함에도 드라마가 달라지는 것은 대사 때문. 김수현 대사의 호흡과 김정수 대사의 호흡에는 큰 차이가 있다. 대사의 길이, 인물 간의 대화 빈도 등에서 작가의 스타일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잘 알려진 대로 김수현의 대사는 말의 재미를 느낄 만큼 경쾌하다. 인물들의 대사 길이도 길다. 김수현은 대사 속에 우리말의 가질 수 있는 주옥 같은 표현을 자주 구사하기로 유명하다. 반면 김정수의 대사는 질그릇처럼 투박한 느낌이다. 일상적이며 짧다. 대신 배우들의 연기에 나머지 부분을 맡긴다. 여기에 두 드라마의 차이가 발생한다. 최근 시청자들은 대사를 통해 이해하기보다 느낌으로 드라마를 이해하고자 한다. 4회가 끝난 후 `부모님 전상서`의 시청자 게시판엔 김수현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 게재됐다. 주로 진부해진 그의 대사에 대한 비평이 줄을 이었다. 일명 `김수현표 대사`로 불리는, 극중 인물들이 쏟아내는 말의 향연에 시청자들이 지치고 있는 것이다. 느낌을 전달하는 데 실패한 `부모님 전상서`는 대사의 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김수현 드라마의 대척점엔 인정옥의 `아일랜드`가 있다. 말보다는 느낌을 싣는 인정옥의 표현은 수식이 생략된 "강국 나쁘다"처럼 `A는 B다`식의 단순 은유다. 여기엔 어떤 설명도 들어가지 않기에 시청자들은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느낌이 오는 소수의 시청자만 열광한다. 대중성을 상실한 마니아 드라마의 특성이다.

말과 느낌이 적절하게 조합된 드라마에 대중은 쉽게 반응한다. 이런 점에서 김정수는 김수현과 인정옥의 중간에 서 있다. `한강수타령`은 시청자의 진화한 기호를 수용하는 면에서 `부모님 전상서`에 앞서 있다. 시청자의 변화하는 입맛에 김수현 작가가 좀더 신경을 써야 할 때다.



[2004.10.29 (금) 헤럴드경제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