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여고괴담―두번째 이야기’를 통해 연기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길지 않은 시간 많은 색깔의 연기를 경험했다. ‘현정아 사랑해’ ‘선녀와 사기꾼’ 등에서는 밝고 명랑한 신세대를, ‘유리구두’에서는 매력적인 악녀를, 영화 ‘하류인생’에서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억척 같은 여인네 상을 그렸다.

그래서일까. 김민선의 색깔은 또래 연기자들이 지닌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풋풋함이나 상큼함보다는 오히려 중견 연기자에게서 느껴지는 여유나 완숙미가 배어날 정도다.

#윤나영을 만나다

요즘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물이 올랐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MBC 주말드라마 ‘한강수타령’에서 왈가닥 사고뭉치 윤나영 역으로 열연 중인 그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휘날리며 남자와 싸움질을 해대기 일쑤다. 육두문자도 심심치 않게 이용(?)하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기 예사다. 하지만 이런 나영이 밉지 않은 것은 김민선의 연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는 부잣집 왕자님을 만나 결혼하는 게 꿈인, 허파에 바람 든 나영의 모습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그는 캐릭터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머리 스타일과 코디를 직접 제안했을 정도로 연기에 적극적이다.

“머리 모양에서 오는 편안함이 연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뭘 해도 편안해지는 느낌이에요. 또 고두심 선생님이나 김혜수 선배님 같은 분들이 주위에 많아 연기에 대해 조언도 자주 해주시고요.”

그의 데뷔 시절과 지금의 연기를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점은 ‘여유’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나올까를 염려하지 않는 여유가 그의 연기에 탄력을 불어넣는다. ‘내공’이 쌓였다고 할까.

‘한강수타령’에서 나영은 ‘약방의 감초’. 가족애를 그린 이 드라마에서 그의 감초 연기는 극의 생동감을 배가시킨다. 김정수 작가나 최종수 PD도 그에게 요구하는 게 많다. “김 작가님은 어려운 역은 다 저한테 시키시는 것 같아요. 대본이 나오면 항상 저한테 ‘민선아, 미안해’라고 하실 정도라니까요. 감독님도 ‘니가 잘해야 한다’고 부담만 주시고요.”

김민선이 ‘한강수타령’의 나영 역을 선택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큰 이유였다. 지난해 9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뭔지 모를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하류인생’은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한강수타령’은 딸로서 해야 할 말을 하기 위해 출연을 결정했다.

“어머니가 계실 때 ‘사랑해요’라는 말을 해본 적이 많지 않았어요. ‘한강수타령’을 찍으면서 고두심 선생님을 친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연기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를 끝내고 나면 더 성숙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그의 성격은 연기에서 보이는 활달한 모습과는 반대로 내성적이다. 촬영이 없는 날에는 집에서 밀린 잠을 자거나 혼자서 생각에 잠기곤 한다. 드라마 촬영에 쫓겨 몸이 약해진 것도 외출을 꺼리게 되는 이유다. 이렇다보니 그 흔한 스캔들 한번 나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다.

“예전에는 정말 건강했는데 요즘은 피로를 쉽게 느껴요. 잠이 부족하면 충전이 덜 된 휴대전화가 통화가 안 되는 것처럼 연기하면서 빌빌거린다니까요. 다른 연예인도 만나고 쇼핑도 하면서 연애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는 다른 연예인들과는 달리 인터넷을 멀리하는 편이다. 한창 유행인 미니홈피도 운영하지 않는다. 되도록이면 팬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려고 노력한다. 지난 8월 생일 때에는 100여명의 팬들과 파티를 열기도 했다.

“유리구두에서 악역을 연기할 때 몇몇 분이 올린 인신공격성 글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 이후로는 게시판을 보기가 무섭더라고요. 또 요즘에는 지나치게 칭찬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죄송해요.”



[2004.11.4 (목) 세계일보 안용성/이종덕(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