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드라마 <한강수 타령>이 요즘 '과거사' 문제로 시끄럽다. 준호의 엄마 단옥(박정수 분)이 과거에 일명 '다마짱'으로 '기생집(혹은 요정)'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이야기가 한창 진행 중이다.

헌데 단옥의 과거를 식구들에게 퍼뜨리는 사람이 바로 딸 준미(안세미 분)다. 준미는 선 봐서 만난 '이상형'과의 결혼이 엄마의 과거 문제로 깨지자, 그 길로 집에 들어와 큰 소리로 엄마에게 따진다.

특별한 방음장치가 돼 있지 않은 집안에서 아버지와 할머니가 이 울부짖음을 듣게 되는 건 당연하다. 단옥이 30년 간 철저히 봉쇄하고 싶었던 비밀은 이렇게 순식간에 탄로 난다.

너무 엄청난 비밀이 너무도 허술하게 폭로되고 난 뒤, 부모의 인생은 벼랑 끝에 몰리는데 반해 정작 딸은 자기 연민에만 빠져 있다. 열렬히 사랑한 것도 아닌 그저 선 봐서 몇 번 만난 '이상형'을 놓친 게 모두 엄마의 '원죄' 탓이기 때문이다.

'요조숙녀'로 살지 못한 엄마를 가장 심하게 비난하는 것도 딸의 몫이다. 엄마와 따로 밖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는 어른스러운 대화 같은 건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것일까?

극적 장치를 보다 정교하게 만들지 못한 제작진의 안이함이, 준미를 철없는 응석받이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드라마 속의 자식들은 서른이 넘어도 공자님이 말씀하신 '이립(而立)'은 커녕 부모에 대한 기대치와 의존도가 가히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런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방영되는 풍토다. 아무리 부모 자식간이라도 각자의 인생은 따로 있다. 부모가 비록 과거에 그리 떳떳하지 못한 일에 종사했을지라도, 그건 부모의 인생이고 게다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사실'이다. 그런데 <한강수 타령>은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미화하는 것으로 자식의 역할을 양분한다.

딸 준미는 부정(不貞)했던 엄마의 젊은 날을 부정(否定)하고, 아들 준호(김석훈 분)는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까지 인용해가며 억지로 미화한다. 둘 다 현실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태도가 사회적으로 확장된 결과가 바로 '과거사 청산'을 어렵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모순이다. 식민지와 내전으로 얼룩진 민족사를 가진 개개인들이 어찌 떳떳한 과거만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분명 누군가는 역사에서 악역을 맡았을 게 뻔한데, 다들 자기 부모는 우국지사에 열녀라고만 우기니 부모들의 과거는 모두 찬란한 '영웅시대'일 뿐이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된 자식은 자신의 직권으로, 일제에 부역한 아버지를 애국자로 둔갑시키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부모 세대의 과거를 인정하라. 잘했든 못했든 있는 그대로의 '부모'를 받아들여야 그 현실을 딛고 새로운 역사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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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31 (금) 고뉴스 김원 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