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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배우' 고두심 ;방송초유의 연기대상 5관왕(해설)
그야말로 대기록이다.

그녀가 수립한 기록은 전무(前無)도 부족해 후무(後無)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마지막 날,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운 그녀의 입에서 가녀리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생명력 강한 어머니의 힘이었다. 나역시 그 어머니를 닮고 싶었다. 그리고 극중에서 어머니를 맡으니 신명이 났다.” 연기의 거장으로 우뚝 선 고두심(53)이다.

그녀가 전날 MBC 2004 연기대상을 받은데 이어 31일 2004 KBS 연기대상을 수상함으로서 한국방송 사상 두방송사에서 동시에 연기 대상을 받은 유일한 연기자라는 명예를 안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수많은 스타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한 전무한 기록 하나를 더 갖고 있다. KBS, MBC, SBS 방송 3사 연기대상을 모두 거머쥐었던 유일한 연기자라는 기록이다. 1989년 ‘사랑의 굴레’로 KBS 연기대상을, 1990년 ‘춤추는 가얏고’로 MBC 연기 대상을, 그리고 2000년 ‘덕이’로 SBS 연기 대상을 받았다.

연기 대상은 연기력 뿐만 아니라 인기, 캐릭터 소화능력, 방송사 공헌도 등에서 최고인 단 한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방송사 심사위원들은 대상 수상자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평생 한번 타기도 힘들다. 2004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함으로써 이제는 다섯 번째 대상 수상기록을 갖게 됐다. 기록은 깨어지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은 있지만 그러나 그녀의 기록은 앞으로 깨어지지 않을 대기록으로 보인다.

그녀의 2004 MBC,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것은 대상의 단순한 가치보다 더 큰 의미를 함의한다. 내러티브 보다는 에피소드와 이미지가 중시되는 트렌디 드라마 범람으로 연기력의 중요성보다는 외모와 이미지가 스타로 부상하는 원동력이 돼버렸다.

대중문화 주요 소비층인 10~20대에게 소구되는 신세대 스타들만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만이 대중매체와 젊은이의 주목을 받으며, 중견 연기자들은 밥먹는 장면에서만 나오는 ‘식탁용 배우’로 전락한 상황에서 50대의 연기경력 30여년의 중견 연기자가 대상을 연거푸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게는 최근 실종됐던 연기 대상의 존립 의미를 복원하는 것이고 크게는 우리 대중문화의 풍토를 보다 튼실하게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고두심의 이같은 연기자로서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신세대 스타에 환호하던 10~20대마저 그녀의 수상에 공감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녀가 펼쳐내는 팔색조의 연기력이다. 그녀의 연기력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연기의 차원을 보여준다.

2004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동시에 고두심에게 대상을 안긴 KBS2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쏟아 부은후 혼자 고통을 떠안다 가슴이 아프다며 빨간약을 가슴에 바르며“내맘이 너무 아푸잖아, 내맘이 너무 아퍼”를 대사로 펼쳐낼 때 모든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신파조의 감정의 과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절절해서, 너무나 공감해서 눈물을 흘린 것이다. 삶의 진정성이 담보된 연기로 브라운관 너머의 시청자의 가슴에 감동의 상흔을 내는 것은 고두심이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MBC 연기대상을 안겨준 ‘한강수 타령’에서도 마찬가지다. 질펀하면서도 질긴 삶의 문양을 그녀의 농익은 연기로 그려냈다.

이같은 팔색조의 연기력은 갖고 있는 고두심을 보면 본능처럼 솟구치는 인물이 있다. 연기자들에게 독종으로 알려져 있고 연기력에 관한 한 양보를 하지 않는 전 MBC 장수봉PD다.

소주가 몇 병 들어가면 장수봉PD가 ‘18번지 노래’처럼 읊조리는 말이 있다. “고두심은 천상 연기자여! 그 여자가 연기하면 맛이 있단 말이야.” 그렇게 독한 장PD가 고두심에게는 그에게 허용된 헌사의 극치인 ‘연기자’ 그것도 ‘천상 연기자’ 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영화평론가 D.믹슨이 ‘연기자 이론’에서 주장한 “배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배역에서도 자신을 맞출 수 있어야하며 모든 행동을 믿을만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야한다” 말을 충족시켜주는 연기자가 바로 고두심인 것이다.

연기자에게는 두가지 연기 스타일이 있다. 철저히 극본속의 캐릭터에 자신을 맞추는 사람과 캐릭터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표현하는 사람이다. 고두심은 전자에 속하는 연기자다. 우선 출연을 결정하고 나면 극중인물과 유사한 주변인물을 만나 성격, 스타일, 대사 등을 연구한 뒤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한다.

고두심의 캐릭터를 표출해내기위해 그녀가 쏟아붓는 정열과 노력은 젊은 신세대 스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된 작업이 따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의 드라마를 보면서 “어, 내어머니와 똑같네” “옛날에 생선장수 해봤나. 정말 생선장수 같잖아”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또한 그래서 그녀가 현대물, 시대극, 사극 등 장르를 넘나들며 카리스마 강한 캐릭터에서 평범한 일상성을 드러내는 인물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해낼 수 있는 것이다.

연기자로서 늦은 나이인 스물네살에 MBC공채 5기로 탤런트에 입문해 가정부, 호스티스 등 단역에 머물거나 그나마 배역도 없이 녹화장 주변을 서성거리는 신세를 면치 못해 무역회사 근무와 탤런트 생활을 병행해야했던 신인시절을 지나 ‘갈대’에 출연해 눈길을 끌고 이후 대연기자가 됐다.

제주 태생인 그녀에게는 한번의 자맥질이 가족의 생계의 문제가 직결된다며 힘찬 자맥질을 하는 제주 해녀의 강인한 생명력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강한 생명력을 바탕에 둔 연기력으로 그녀는 브라운관을 가로 질러 시청자의 가슴에 감동의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고두심은 인생의 두가지 마음을 아름답게 피워 낸 보기 드문 사람이다. 하나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고 하나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다.



[2005.1.1 (토) 마이데일리 배국남 전문기자]




2005-01-03(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