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가 소비하는 ‘대한민국 대표 어머니’상은 김혜자가 먼저 구현했다. MBC ‘전원일기’에서 김회장의 아내로 각인된 김혜자표 어머니는 자애로움과 후덕함 그 자체다.

동네 여인들의 분쟁을 중재해주는 것도 김혜자의 몫이며 중재방식도 양쪽 모두에게 “조금씩 양보해라”는 식이다. 따라서 김혜자는 악역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가끔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물론 김혜자의 어머니 이미지는 연기로만 쌓아올린 게 아니다. 10년 넘게 아프리카 등 빈곤국을 돌며 봉사활동을 펴왔다. 굶주리는 어린이들의 참상을 보며 세상과 자신을 발견해 나가며 ‘코스모폴리탄적인 어머니상’도 지니게 됐다.

고두심은 좀 다르다. 김혜자가 푸근하다면 고두심표 어머니는 절절하다.

무능한 남편을 둔 때밀이 엄마(영화 ‘인어공주’), 딴살림을 차린 남편을 둔 엄마(KBS ‘꽃보다 아름다워’), 남편을 일찍 여읜 생선장사 엄마(MBC ‘한강수 타령’)는 억척스럽고 때로는 악다구니도 서슴지 않는다. 아무데다 침을 뱉는 고두심표 어머니는 아무래도 김혜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된다.

요즘들어 고두심표 어머니가 더욱 와닿는 것은 우리 가정의 리얼리티와 경기침체와 관련이 있다.

‘언제나 웃음이 넘치는 화목한 우리집’은 공익광고에나 등장할 판타지다. 모든 가정은 밖에서 보면 아무 일 없는 거 같아도, 들여다보면 다 문제가 있다. 자식과 부모의 헤게모니는 시시때때로 뒤집어지고, 자매와 형제끼리는 선망과 질투가 뒤섞인다.

이런 가정의 엄마가 고두심이다. ‘꽃보다~’와 ‘인어공주’ 등에서의 고두심 가정은 일면 가족의 징글징글한 속성을 신랄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 피의 끈적임을 잊지 않는다.

‘꽃보다 아름다워’의 본래 제목은 ‘울엄마는 바보’였다고 한다. 이 제목이 김혜자에겐 어울리지 않지만 ‘고두심 어머니’의 이미지와는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고두심과 김혜자가 분하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인 애정은 비슷하지만 살아온 환경이 달라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동네 시장에서 생선장사로 자식들을 키워낸 고두심표 엄마는 화가 나면 다 큰 자식들의 등짝도 후려치는 막가파 엄마다. 하지만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체면과 자존심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그 삶의 약자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너무 많다. 이런 엄마의 사랑은 분열된 가족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이다.

우리는 그런 고두심표 엄마를 생각하면 자꾸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고인다. 김혜자표 어머니는 이런 억척스러운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고두심표 어머니는 가족이 동반자살하고, 번듯한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는 힘든 경제상황에서는 더욱 더 실감나게 소비된다.

외환위기때 대중문화는 고개숙인 ‘아버지’를 그려내며 추억했다. 외환위기보다 더 어렵다는 지금은 역경타개의 힘의 근원을 ‘어머니’의 용기와 저력에서 찾을 수 있다면 ‘고두심표 어머니’가 그 전형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05.1.14 (금) 헤럴드 프리미엄 서병기 대중문화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