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김정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두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김 작가를 존경하는 후배 작가와의 ‘한강수타령’에 대화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최불암 선생과의 ‘전원일기’에 대한 김작가의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김작가의 대를 이을 후배 작가는 ‘한강수 타령’이 김정수 작가의 작품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더군요. 저 역시 종영을 앞둔 ‘한강수 타령’에 대해 기대만큼 실망이 컸던 작품입니다. 김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에 대해 보고, 비평하고 애정을 가졌던 한 시청자로서 말입니다.

전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MBC 가이드에서 원고 청탁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한강수 타령’에 대해 글을 쓴 적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 그리고 인간 냄새가 나는 드라마를 일관되게 쓰셨던 김정수 작가이기에 말입니다.

어머니와 자식들을 중심으로 이 시대의 어머니의 삶을 진솔하게 그린다는 기획의도는 첫딸(김혜수)의 갈팡질팡한 삼각관계에 허부적거리다 방향을 잃고 둘째 딸의 연애부분으로 넘어가고, 이내 종반부에서는 어머니의 암이라는 극적인 갈등의 장치를 뽑아 들었습니다. 이 시대의 시청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이 무릎을 치며 공감하는 어머니의 진정성은 두딸의 연애담 앞에서 허무하게 실종돼버렸습니다. “이것은 아닌데”라며 본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김작가의 앞으로의 기대를 하게 한 것은 최불암 선생과의 최근 만남에서 나눈 대화였습니다. ‘전원일기’ 이야기를 하다가 “ ‘전원일기’는 김정수 작가의 드라마였고 김작가가 떠난 ‘전원일기’는 의미와 정체성을 잃었다”는 최선생의 말을 듣고 저 역시 공감을 했습니다.

평소 후배작가 노희경은 김작가의 드라마에 대한 열정과 공부하는 자세에 대해 늘 경외감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저도 노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동안의 김작가의 작품 세계와 태도를 말입니다. ‘한강수 타령’에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김작가에 실망을 했을겁니다. 하지만 그 실망은 아마 다음 작품에서 더 큰 기대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김작가는 늘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작가에게는 고언(苦言)과 위로를 주기위해, 시청자들에게는 김작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위해 제가 썼던 ‘사람냄새 나는 이시대의 작가, 김정수’라는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사람냄새 나는 이 시대의 작가, 김정수>

교통사고가 났다. 부상을 당한 한 여자가 피를 흘리며 차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람에 날리는 원고를 챙기는 일이었다. 중상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대신 그녀는 방송시간에 맞추기 위해 드라마 원고를 정신없이 찾았던 여자. 그녀가 바로 MBC '전원일기'을 12년간 극본을 썼던 작가 김정수다.

8개월간의 '파도' 방송을 끝내던 날, 그리고 ‘그 여자네 집’에 대한 시청자의 환호를 뒤로하던 날 그녀는 "그 동안 푸른 하늘을 보지 못했으니 마음껏 푸른 하늘을 보고 싶고, 다리가 아프도록 한없이 길도 걷고 싶다"고 말을 했다. 방송이 시작되면 극본의 마감을 위해 그녀는 일상인들이 흔히 보고 다니는 하늘조차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 바로 다음 작품구상이 그녀를 옥죄었다. 휴식이 아니다. 방송이 없는 동안에는 드라마의 윤곽을 그리고 취재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현역 작가들에게 존경하는 동료 작가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이름이 바로 '김정수'다.

왜 그럴까? 유명작가 김정수일뿐만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대하는 이웃의 평범한 아줌마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다도 잘 떨고 힘든 동료를 보면 진정으로 가슴 아파한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작가의 삶과, 사고 그리고 성격은 작품에 드러나게 돼 있다. 그녀는 인간에게 무한한 사랑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며 사랑이 있는 사람이다.

"경쟁이 치열한 방송가에서 참 찾아보기 힘든 따뜻함과 인간미가 있는 사람" 이라는 김한영 PD의 말처럼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가다. 1981년부터 1993년까지 12년 동안 썼던 농촌드라마 '전원일기', 혼자 된 어머니의 홀로 서기를 그린 '엄마의 바다', 그리고 가족의 따뜻함을 그린 '그대, 그리고 나' 등 작품은 그녀를 너무 닮아있다.

부드러움 뒤에 강직함도 숨어있다. 전두환정권시절 '전원일기'의 내용을 문제 삼은 외부 간섭에 단호하게 맞서 결방 된 적도 있다. 그녀는 강조한다. "작가는 글의 테크닉보다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그녀의 작품속에는 트렌디 드라마나 근래들어 작품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가족이 주요한 모티브이자 내용을 전개하는 핵심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강한 가족이 중심이 돼 사랑과 갈등 그리고 화해를 그려나간다.

그렇게 노련하고 최정상에 있는 작가도 늘 드라마가 방송되면 긴장을 한다. ‘그 여자네 집’ 기자 시사회가 있던 전날 한 시간 간격으로 잠을 깼다고 했다. 긴장이 되어서, 잘못된 것이 없나, 비판받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극본을 쓰는 시간보다 지우는 시간이 많다는 그녀는 작품 집필에 들어가면 하루 온종일 작품에만 몰두한다. 식사도 책상머리에서 해결할 만큼 드라마에 온정신이 팔려있다. 이런 어머니를 보고자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딸이 다른 일은 다해도 드라마 작가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두 아이가 자라면서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나가 놀아” “조용히 해” 두 마디 였다고 했다. 작가들의 집필의 고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정수에 있어 작가적 역량은 다양한 독서와 취재 그리고 부단한 글쓰기 훈련에서 나온다. 감각이나 유행보다는 실제 경험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며 리얼리티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꿈이 있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 지를 김정수에게서 본다. 글이 쓰고 싶었다. 남녀차별 하지 않는 아버지 덕분으로 문학소녀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주간지에 근무하다 결혼을 했다. 결혼해서 애 낳고 남편 뒷바라지하다, 잊고 있던 글쓰기의 꿈이 되살아났다. 이것이 1979년 MBC극본 공모에 당선으로 이어졌다. "아는 것만 쓸 수 있다"는 김정수. 가족 홈드라마만을 고집하는 이유다. “가족밖에 모르니 가족 드라마를 주로 쓴다. 콩알만한 어린아이부터 여든 살의 어르신까지 볼 수 있고, 텔레비전을 끄고 나서도 잠시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작품을 쓰고 싶다.” 비록 거창하지 않지만 생각의 씨앗거리를 뿌리고 싶단다.

10~20대만 트렌디 드라마의 범람과 연기를 못해도 얼굴만 예쁘고 인기만 있으면 엄청난 출연료를 주고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스타시스템, 작가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하는데도 방송직전 대본을 넘길 정도의 졸속 제작이 작가의 생명을 단축시킨다고 방송환경에 대한 일침을 놓는다.

집필하는 극본이 방송되는 동안 반사적인 습관이 나타난다. 베란다에 나와 앞 단지의 거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텔레비전이 놓여있는 거실의 불빛의 변화로 드라마 시청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 " '그대, 그리고 나'가 방송될 때 대부분의 거실의 불빛이 비슷하게 변화했다. 전율이 느껴졌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거짓말을 못하겠다." 작가, 김정수는 또 하나의 꿈을 꾼다. 사랑은 그 사람 대신 죽을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람 대신 죽어주고 싶은 것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이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꿈을.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를 써온 작가 김정수. 사진제공=MBC]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knbae@mydaily.co.kr)

- 언제나 즐거운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저작권자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2005.3.13 (일) 마이데일리 배국남 대중문화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