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인터뷰②] MBC 새 사극 '이산 정조' 연출하는 '대장금'의 이병훈
PD
이미 많은 연출자들이 사십대 중반을 넘기면 큐사인의 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예순이 넘은 이 사극 거장은 여전히 현장에 우뚝
서있다. 대본 리딩을 지켜보고 인터뷰를 하는 내내 놀란 것은 여전히 그의 넘치는 체력과 사극 아니 드라마에 대한 열정. 해박한 지식과 논리였다.
대본 연습에서 감정을 실어 연기하는 모습은 흡사 그가 중고참 연기자가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다.
30년을 연출 현장에 있었지만 여전히 '시청자의 마음을 읽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병훈 PD는 "시청자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늘 명심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도 시청자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읽기 위해 소위 '미드'(미국 드라마)를 일주일간 몰아서 봤다는 이 PD의 드라마 이야기는 계속됐다.
요즘 젊은 층에 인기가 최고인 미국 드라마를 섭렵하셨다는 데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24' '프리즌 브레이크' '그레이 아나토미' CSI' '프렌즈' 등등 소위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작품들을 골라서 쭉
봤지요. 우선 이들 드라마들은 굉장히 속도감이 빠르더군요. 한회라도 놓치면 그다음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전개가 건너뛰기도 하고요. 또
이야기가 무척 다양하고 꼼꼼해서 빨려들어갈 만 하더군요. 젊은 층에게는 잘 맞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40대 이상이 보기에는 우리 드라마 스타일과는
잘 안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장금'을 시즌제로 하면 70~80 분 물이니까 거의 시즌 4 짜리 정도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해외에서도 연출 제의를 많이 받으셨다면서요
'대장금' 이후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 정말 각국에서 연출 제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할 수가 없었어요. 수 십 년동안 연출하면서도
잘된 작품도 있고 안된 작품도 있을 만큼 저도 시청자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가 모르기도 하고를 반복했어요. 우리 시청자 마음 잡기도 그렇게
어려운데 제가 어떻게 낮선 남의 나라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고사했죠.
이번에도 '대장금'의 스태프가 대부분 합류했습니다
당시 책임 프러듀서부터 카메라 조명 분장 미술팀 등 대부분이 당시 '대장금' 멤버들입니다. 출연진들도 주인공 몇명 빼고 당시 참여했던
반가운 멤버들이 많이 합류했어요. 친정같은 MBC가 많이 지원해주고 있어서 이번에 잘 안되면 전적으로 제 책임이지요.(웃음)
매번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볼거리와 알거리를 발굴하고 성공시키셨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점을 기대할 것이 있을까요
'허준'의 동의보감은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인정을 못받았던 것인데 중국와 일본에서는 거의 손에 꼽히는 의학서입니다. '허준'을 통해
'동의보감'이 새롭게 평가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보람이었지요. '대장금' 때는 음식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촬영중간 지점 까지도 방송사나
제작진 등 많은 곳에서 음식의 포인트를 반대했습니다. 왜냐면 전통 음식이라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인 것이어도 그렇고 너무 평범한 것들이어도 반응이
오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번에는 정조 시대 있었던 '도화서'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곳이 아니라 과학과 건축 기술 등 다양한 작업들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음을 새롭게 보여주게 될 겁니다. 도화서는 이 드라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됩니다.
드라마에서 영조 역의 이순재 씨를 제일 먼저 캐스팅 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잘 아시겠지만 그동안 제 사극에 자주 나오셨고 이순재 씨가 가진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연기력과 대사 전달력, 무엇보다 낮게 내리깔리면서도
거역할 수없을 것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가 압권인 분입니다. 영조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입니다. 이순재 씨말고는 달리 대안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대본이 나오기도 한참전인 지난해 9월 얘기하고 결정했습니다. 영조가 확실하게 정해져야 정조도 그 색깔과 톤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죠.
김재형 PD가 SBS에서 새로 만드는 '왕과나'와 세번째 대결을 벌이게 된다고 관심들이 대단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게 참~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1승 1패다 뭐
이렇게 흥미롭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김 선배와 저는 무척 곤혹스럽죠. 이게 다 부쩍 대응 편성을 하게 된 각 방송사의 전략 때문이죠.(웃음)
예전에는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지만 지금은 다시보기도 있고 여러가지 방송을 볼 수 있는 환경이 많아졌으니 다행이지요.
캐스팅 때문에 한참 애를 먹었다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어휴~참, 예전에도 몇번 얘기했다가 주변에서 너무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습니다. 분명 캐스팅은 돈과 연결된 문제고 이는
한류 붐이 가져다 준 어두운 역풍이기도 합니다. 그 이전에는 그렇게 까지 배우 출연료가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류 붐이 일고 부터는
배우들의 몸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습니다. 제작비는 뻔한데 출연료가 너무 오르니 도무지 배우를 구하기도 힘들고 결정하고 나서는 출연료로 나간
제작비 때문에 제작이 졸 속으로 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주몽'을 보세요. 후반부에 전쟁 장면이 엑스트라 40~50명 가지고 찍는 걸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이제 우리의 드라마들이 아시아
전역으로 수출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허술한 전쟁 장면가지고 아시아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고개를 들겠습니까? '연개소문'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출연진들이 드라마와 함께 상생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극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사극은 '조선왕조 500년'같이 전통적인 패턴의 사극과 '허준'이후의 퓨전 사극으로 나눌 수 있어요. 한번은 일본의 사극 '히데요시'가
시청률 30%를 넘기는 호황을 이룬데 대해 비결을 묻는 인터뷰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 연출자는 학생 시청자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 나도 젊은 학생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사극을 만들어야 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허준' 이후로는 '옷은 사극이되 내용은 현대물처럼'이란 컨셉트로 만들게 됐습니다. '허준'을 찍을 때 학생들이 촬영장에서
500명씩 줄줄이 따르는 광경을 보고 연출자로서 감격스러웠어요. 또 학교 선생님들이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 줘서 교육에 무척 도움을 받는 다고
얘기하는 걸 들으면 그렇게 보람스럽더라구요. 제 나이에 재미만을 추구하는 드라마를 만들기보다는 의미를 함께 담는 것이 중요하다는 소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사극을 하는 후배 연출자들이 별로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렵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고 역사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니 요즘 젊은 연출자들에게 그렇게 매력있는 분야가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극의 매력은 분명 있습니다. 그걸 느끼기 전까지의 과정이 힘든겁니다. 어느 분야든 도전하는 사람만이 열매도 딸 수 있지
않겠어요. 전광렬이나 이영애 처럼 자기 연기 인생에서 전환점을 찾으려 열심히 해서 성공한 것처럼 연출자도 그런 마음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남궁성우 기자 socio94@cbs.co.kr
200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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