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라] <이산> vs <이산>│왕이 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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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산>은 모든 시청자가 결말을 다 아는 이야기다. 이산이 그의 열망대로 왕이 되고, 왕이 된 후에도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보낸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뭘까? 누군가는 이산이 왕이 되기 위해 주어진 과제들을 해결하는 모습에서 재미를 찾고, 또 혹자는 <이산>안에서 구현될 새로운 정치에서 의미를 찾는다. <매거진t> 조지영, 김신식 TV평론가가 <이산>을 전혀 다른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편집자주

모든 드라마는 목표지향적 인물을 사랑한다. 주인공이 그 목표를 이루려고 설쳐댈수록, 그 목표가 불가능해보일수록, 장애물이 험난할수록 드라마의 인기는 높아진다. 어쩌면 당연한 것 같은 드라마의 원리는, 이병훈 감독 세계에 이르러 가장 뚜렷한 윤곽을 보인다. ‘이병훈 월드’의 자장 안에서, 인물들은 저마다 주어진 과제를 달성하려 갖은 애를 쓴다. 그들은 명의가 되고(<허준>) 거상이 되고(<상도>),임금의 주치의(<대장금>)가 되었다.

알려진 결론을 버티는 이야기의 힘

그렇다면 이산(이서진)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는 살기 위해 왕이 되고자 할 것이고, 결국 조선조 22대왕 정조가 될 것이다. <허준>이 그러했듯, 시청자들이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이산>을 보는 것은 이산이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그 디테일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병훈 감독은 그것을 이산이 정순왕후(김여진)를 중심으로 한 노론의 쉼 없는 방해 공작을 뚫고 왕이 되는 ‘스테이지 클리어’의 과정으로 끌고 간다. 처음에는 영조(이순재)의 신임부터 얻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의 호위 군사들을 성장시키는 ‘미션’을 수행해야 하며, 그 뒤에는 정후겸(조연우)과의 ‘배틀’이 펼쳐질 것이다. 롤플레잉 게임의 캐릭터 레벨업을 연상시키는 주인공의 성장기는 <허준>부터 시작된 이병훈 감독의 특징이다. 하지만 허준으로부터 장금에 이르는 이병훈 감독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모든 문제를 초인적인 능력으로 홀로 돌파하는 영웅들이었다. 하지만 이산은 아무리 다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해도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최근 <이산>의 화제는 단연 조선의 ‘마키아벨리’ 홍국영(한상진)의 등장이다. 이렇다 할 ‘브레인’이 없었던 이산 진영에 작전을 짜고, 덫을 놓고, 계산을 하는 책사로서 홍국영이 등장하며 <이산>은 다음 단계로 진입했다. 홍국영의 등장 이전에도, 당면한 과제를 엉겁결에라도 처리한 것은 이산이 아니라 송연(한지민)이거나 대수(이종수)였거나 심지어 춘화계의 신성 이천(지상열)이었다. 그래서 이산이 어린 시절의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도 제위에 올라 폭군이 되지 않고 성군이 된 것은, 제왕의 길을 가르친 할아버지의 영향,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도 있겠다. 좋은 지도자란, 결국 좋은 인재를 보는 눈이 있고 그를 믿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는 지도 모른다.

‘스테이지 클리어’식 문제해결의 위험성

그러나 이산을 둘러싼 정치적 난제들이 주 2회 편성 주기에서 해결되는 패턴은 가끔 쓰면 양념이지만 오래 쓰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여러 사람들의 이념과 현실적인 이권이 얽힌 노론과 이산의 대립은 단순히 선악 대립으로만 몰고 갈 경우 현실 정치의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화할 수도 있다. 특히 아직도 쪽대본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당장의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유혹을 느낄법한 일이지만, 이야기를 단순하게 만들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무서운 현실정치의 논리 속에서도 이상과 개혁을 꿈꾸던 지도자의 정치력을 보여주는 드라마라면 더욱 그러하다.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 시대에 <이산>이 살고자 왕이 됐던 사람, 그리하여 사람을 살리는 왕이 된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믿게 만들 수 있을까.
글 조지영

<이산>이 표방하려는 임금의 리더십은 인(人)과 민(民)으로 대변되는 정조의 ‘관계론’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는 궁궐 내의 소통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궁궐 안과 밖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도록 민(民)의 행위에 중요성을 부과한다. 이산은 송연과 대수를 ‘동무’라고 부른다. 세손인 이산에게 그들은 한편으론 백성(民)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평범한 사람(人)으로 맺을 수 있는 존재, 즉 친구인 것이다.

정조의 정치 행보를 압축한 이산의 관계론

매회 목숨을 위협받는 이산에게 ‘동무’인 송연과 대수의 존재는 극의 팽팽한 긴장감을 풀어주고, 이산의 인간미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이산은 극 중에서 청나라 사신 왕유가 수종다모인 송연을 처소로 데리고 가려는 것을 제지하거나, 무과에 지원하려는 대수에게 힘을 북돋아주며 ‘동무’로서의 연을 놓지 않는다. 본 드라마는 이런 이산의 정감 있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인공 이산이 송연과 대수를 ‘임금 -백성’이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사람-사람’이라는 수평적 관계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즉, <이산>에서 인간미가 극적으로 표출되는 지점은 조선 시대의 사회적 위치인 신분과 직분의 경계를 주인공 이산이 기존과는 다른 관점으로 인식하는 데 있다. 이는 곧 신분에 가려 실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던 인사들을 중히 여겼던 정조의 역사적 사실을 감안했을 때, 추후 전개될 ‘왕’으로서의 이산이 가질 개혁적인 정치 행보의 근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만 아직까지 대수와 송연의 존재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이산의 생존을 순간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인연으로만 소구될 뿐, 이산이 백성들의 존재와 의식을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자의 역할로선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쉽다. 더욱이 삼합회나 야쿠자의 회합 장면을 연상시키는 정순왕후를 비롯한 신하들의 모습은 정조의 관계론이 갖는 목표 의식이 예전 사극의 정치적 암투만을 답습하는 한계에 갇힌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도록 만든다.

정조의 ‘인적 네트워크’ 제2막

익위사를 비롯해 성송연, 박대수, 남사초, 채제공, 홍국영 그리고 뒤에 등장할 정약용까지, 이른바 이산의 ‘인적 네트워크’가 기대되는 이유는 <이산>이 장차 정조가 될 이산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다재다능한 역사적 인물들이 실존했던 시기의 드라마라는 점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조가 조선 시대에 화려한 문화 정치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자신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과의 인연이었다. 임금으로서의 자질을 시험받고 있는 이산이 ‘임금학개론’을 서서히 마무리하고 ‘정조’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요즘, 이산이 체득한 인연의 정치학은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 같다.이제 <이산>의 서사는 권위를 위협하는 반대 세력과의 정쟁과 백성의 행복을 위한 개혁이라는 측면을 함께 가지고 간다. 이 두 축의 서사가 얼마만큼 균형 있게 다뤄질 것인가라는 점은, “(기존의 <조선왕조 500년>이 그랬던 것처럼) 권력을 가진 왕과 그 주변의 이야기를 이번에는 그리고 싶지 않았다”는 이병훈 감독의 말이 제대로 지켜질 것인가에 대한 관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글 김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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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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