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사극 ‘이산’(극본 김이영 / 연출 이병훈) 12일 방송분을 통해 영조(이순재 분)의 금등문서가 공개됐다. 지난 1월30일 방송분에서 그 존재가 처음 알려진 금등문서는 영조가 사도세자에 대한 자신의 과오를 적은 비서(秘書)다.
금등문서는 금등이란 쇠줄로 단단히 봉해 비서(문서)를 넣어두는 상자를 일컫는다. 이는 중국 주왕조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인 주공이 하늘에게 무왕의 병을 낫게 해주고 대신 자신을 데려가라고 빌었던 것에서 유래하는 말로 신하가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산' 12일 43회 방송분에서 영조는 “산이 보위에 오르면 전하려 했으나 지금 꼭 필요할 것 같다”며 채제공을 통해 금등문서를 세손 이산(이서진 분)에게 전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금등문서는 영조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금등문서는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영조의 이 기록은 영조 집권 중 절정의 권세를 누리며 이산의 왕위계승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존재가 돼버린 노론을 견제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사도세자가 대리청정 기간 동안 소론의 입장에서 노론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노론의 반발로 연유된 것임을 상기했을 때 이 문서의 정치적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영조는 자신의 권위에 스스로 흠집을 냄으로써 영조의 정치신념을 권력의 근간으로 삼는 노론을 뿌리부터 흔들겠다는 것.
또 금등문서 자체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세웠던 노론의 고발이 애초에 잘못된 것임을 영조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이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노론의 역모로 몰아세울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제공해 주는 문서이기도 하다.
훗날 채제공은 정조에 의해 영의정에 제수되던 해 사도세자에게 씌워진 모함을 씻어버려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려 정조의 위상과 정통성을 바로 잡고 사도세자 죽음 당시 정국을 주도했던 노론 세력에게 일정의 책임이 있다는 논리로 이들을 압박한다. 이에 대한 노론 세력의 강력한 대응이 잇따르자 보관하고 있던 영조의 금등문서를 공개해 이들의 논리를 잠재우는 히든 카드로 사용했다.
이현우 nobody@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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