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표 사극엔 휴머니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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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상도’ ‘대장금’에 이어 MBC 특별기획 ‘이산’을 연출하고 있는 이병훈(64) PD는 배우나 작가가 아닌 연출자로 드라마를 기억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는 역사 속의 개인이 아닌 인물 자체의 내면 성찰에 집중해 평범한 인물이 주위의 도움을 받아 성공하는 과정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그리는 ‘이병훈표 사극’을 만들어 냈다.

이번 주 ‘이산’에서는 영조(이순재 분)와 정조(이서진 분)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성공스토리’를 넘어서는 ‘이산’ 2라운드가 선보일 예정이다.

1박2일에 걸친 촬영이 끝난 16일 밤 서울 여의도 MBC 사무실에서 이 PD를 만났다.

◆온 가족 함께 보는 드라마=이 PD가 드라마에서 한결같이 추구하는 가치는 간단 명확하다. “일단 재미있고 유익해야 하며,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혈이 낭자한 활극, 자극적인 애정행각은 그가 추구하는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그는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주인공이 새로운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짧은 호흡으로 그리면서 긴장감을 부여한다. 여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전문직업인 세계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탄탄한 이야기 전개가 가미된다. 그의 사극이 정형화됐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시청자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 점점 더 강력한 자극을 시도하는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이유다.

1970년 MBC TV 드라마 PD로 입사해 드라마를 시작한 이 PD는 2003년 ‘대장금’ 대성공으로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산’도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드라마만 40년 가까이 연출했지만 아직까지 국내 시청자의 공감조차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허준’이나 ‘대장금’을 끝내고 난 뒤 뭘 해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뒤이은 ‘상도’와 ‘서동요’가 부진한 시청률을 보였죠. 시청자는 항상 변덕스럽고 새로운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인류 보편적인 소재를 이용한 탄탄한 드라마로 한국 시청자에게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언제든 외국에서도 통할 거라 생각합니다.”

◆정조 즉위, 이산 ‘2라운드’=18∼19일 방송분에서 영조시대가 막을 내리고 정조가 조선의 22대 국왕으로 등극한다. 세대교체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지난 12일 ‘이산’ 시청률은 35.5%까지 올랐다(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 이번 주 방영분에서 정조의 즉위식에 이어 정적을 대거 숙청하는 장면을 선보인다.

이 PD식 드라마 문법을 따르자면 조선 최고의 의원이 되거나(허준), 한 나라의 임금이 되는(서동요) 등 주인공이 최고 자리에 오르면서 드라마는 끝난다. 하지만 ‘이산’은 이제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다. 앞으로의 극 전개에 대해 이 PD는 “가장 큰 딜레마는 정조의 치적이 뛰어남에도 폭군의 횡포와 비교해 극적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라며 “정적을 포용해서 공존하는 방식을 새로운 형태로 보여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조와 성송연(한지민 분)의 사랑과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세자 책봉, 홍국영(한상진 분)의 세도와 몰락도 ‘이산’ 후반부의 한 축을 이룬다. 지금까지 극의 3분의 2가량이 진행된 상태로, 10회 정도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

정조의 뛰어난 정치를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도 전달할 예정이다. 이 PD는 “정조는 과거 왕들과 달리 정치적 반대세력도 능력만 있다면 등용해 개방의 시대를 연 인물”이라며 “정조의 포용정책이 경제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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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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