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왕의 나라인가? 사대부의 나라인가?
이산 정조(이서진)의 등극과 함께 개혁의 시대에 한걸음 다가선 MBC 월화사극 ‘이산’이 왕권과 신권 사이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치열한 힘겨루기를 그렸다.
4일 49회 방영분에서 정조는 당색으로 소외된 남인, 소론 출신의 학자들과 서얼 등용을 통해 새로운 혁신 정치를 펼 인재들을 양성하고자 하지만 오랜 시간 조정을 장악해 온 노론 대신들은 어린 주상의 치기 어린 독단을 막아서야 한다며 전면전을 불사했다.
노론 대신들은 전원 사직상소를 올리며 “임금 없이는 가능해도 중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국정운영이다. 주상이 먼저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고 초강수를 뒀다. 이에 대해 정조는 “조정과 관직은 사대부의 존재 이유다. 그것이 위태롭다면 흔들릴 것”이라며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면 떠나라고 맞불을 놓았다.
이때 새롭게 등장한 노론의 전 당수인 전 좌의정 장태우(이재용 분)는 정조와 독대를 청하고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장태우는 이조판서 최석주(조경환)처럼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로 노론의 당수이기 전 풍부한 학식과 청빈한 생활로 유생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로 그려진다. 특히 장태우는 조선이 사대부의 지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나라인 만큼 왕 역시 사대부에 의해 비판과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신권국가 신봉자로 설정됐다.
때문에 장태우는 정조에게 정치적으로 노론이 옳다는 것은 이미 선대왕도 인정한 부분이라며 남인과 소론, 서얼들을 등용하고자 한 것은 도와 예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조는 서로 다른 것을 조화시켜 대동하게 나아가는 것이 바른 정치라고 생각한다며 장태우의 주장을 반박했다. 또 옳다고 판단되는 것이 있다면 선대왕의 뜻이라도 바꿔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실제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정도전이 조선이란 국가의 기초를 설계한 ‘조선경국대전’을 보면 조선의 군주는 교화와 권위를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는 통치 원칙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교화 군주는 유교의 정치 이론에서 나온 개념으로 왕 역시 학문과 도덕으로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며 이미 수양을 완성한 사대부에 의해 수양되는 것이 왕으로 봤다.
때문에 사대부에 의해 수양되는 조선군주의 왕권은 신권에 의해 견제되고 감시되는 대상이다. 세종과 성종 같은 왕은 학문정치를 기반으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인정했지만 태종이나 세조는 왕권 강화를 통해 국가제도를 이끌고 개혁하고자 했다. 정조 역시 학문정치를 기반으로 했지만 공론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의 정치체계 속에서 친왕 세력 양성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새로운 개혁을 창출해 내려 했다.
이제 ‘이산’이 노론의 선봉에 사도세자 죽음과 관련, 일신의 안위를 위해 암살과 모수를 행하던 정순왕후(김여진) 대신 이론으로 무장한 장태우라는 인물을 세움으로써 정조의 친정체제 구축과 개혁 단행 과정에 새로운 갈등구조를 만들어 낼 것으로 보인다.
조은영 helloey@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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