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악역이 떠야 드라마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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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강한 악역이 있어야 드라마가 뜬다?’

개성 넘치는 악역이 활약하는 드라마가 시청률 상위에 오르고 있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문제 인물 역할을 탄탄한 연기력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들의 ‘나쁜 짓’이 애절한 가정사나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해야만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얻는 양상이다.

전체 드라마에서 부동의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KBS 일일연속극 ‘미우나 고우나’에서는 봉수아(유인영 분)가 버릇없는 부잣집 딸로 등장해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전형적인 재벌가의 무남독녀인 봉수아는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모든 면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며 살아온 탓에 뭐든 제멋대로다. 아버지와 재혼한 오동지(김혜숙 분)를 무시하고 가사도우미처럼 대하기 일쑤인 그의 행동 이면에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있다는 시청자들의 덧글도 올라와 있다.

특히 “재벌가 딸로 주어진 현실만 받아들이는 철없는 아이보다는 자신이 자란 세계와 다른 부분에 대해선 당차게 반항하는 모습이 ‘재벌’ ‘성공’이란 뻔한 스토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의견(이혜영)도 있다.

월화드라마 부문에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는 MBC ‘이산’에서는 정조(이서진)의 개혁을 가로막는 악역으로 좌의정 장태우(이재용)를 내세워 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장태우는 첫 등장에서부터 “임금이 뜻을 잘못 펼치고 있어 신하된 도리로 막겠다”며 정조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는 등 앞으로의 전개를 흥미롭게 하고 있다.

특히 장태우는 권모술수로 일관하던 기존 노론 세력과 달리 신권 중심의 유교사회를 주창하는 도덕적인 유학자 상을 펼쳐내고 있어 절대적인 선악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며 막바지에 접어든 드라마에 새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20회 연장방영을 결정한 SBS 주말극 ‘조강지처 클럽’의 한원수(안내상)도 부인을 내쫓고 다른 여자와 함께 사는 바람둥이 역할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는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넘어서서 조강지처인 나화신(오현경)에게 대놓고 “나가라”며 갖은 모욕과 조롱을 내뱉는다.

하지만 한원수의 ‘찌질함’이 시청자들로부터 주목을 끄는 이유는 못돼서가 아니라 못났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남성 캐릭터라기보다는 불륜을 ‘사랑’으로 포장하면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다가 조강지처에게 ‘풍차돌리기’를 당하는 이기적이고 소심한 남성상으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속의 우리 남성 모습이란 이야기다.

MBC 아침 드라마 ‘그래도 좋아’의 서명지(고은미)는 주변 상황이 만들어낸 새로운 악녀 상을 보여준다. 제화업계 1위 한강제화 부사장인 서명지는 언니 이효은(김지호)의 구두 디자인을 훔쳐내 효은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자신의 시누이가 될 사람의 남편과 불륜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그래도 좋아’가 연장방송에 돌입한 것은 서명지가 타고난 악녀가 아닌 만들어진 악녀 역할을 적절하게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표독스러운 연기로 밉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능력의 한계로 늘 언니에 뒤처지는 동생의 열등감을 실감나게 펼치고 있는 고은미에 대한 시청자 칭찬이 꽤 많다. 시청자 배선욱씨는 “주연급이 아닌데도 서명지가 드라마 스토리를 주도할 만큼 나쁜 역할 연기 등이 공감 간다”고 말했다.

드라마 평론가인 충남대 윤석진 교수(국문과)는 “기존의 악역들은 동정의 여지가 없이 나쁜 역할만 맡고 있었던 데 비해 최근의 개성 있는 악역들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개연성과 성격적 특성이 있어 심리적인 면이 잘 표현되고 있다”며 “악역에 대해 비난을 하면서도 동정심을 느끼는 것이 드라마 흥행의 주요인”이라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segye.com

200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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