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사극 '이산'에서 홍국영(한상진)은 극 초,중반 드라마의 상승세를 주도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캐릭터다.
이분법적 선악구도가 명확한 월화사극 '이산' 안에서 개인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세손 이산(이서진)의 현실적 한계를 보완해주는 든든한 브레인 역할을 자처한 홍국영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특히 영민한 머리, 뛰어난 위기대처 능력, 거침없는 언변에 시니컬한 매력을 지닌 홍국영은 현대인들의 호감을 끌어낼 수 있는 면면이 많았던 캐릭터였다. 홍국영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특징들 때문이다.
하지만 정조 이산이 왕위에 등극하자 홍국영이란 캐릭터의 매력은 오히려 반감되기 시작했다. 정순왕후(김여진)를 위시한 노론 벽파와의 갈등은 세손시절처럼 극적이지 않고 왕좌에 오른 정조의 능력이 부각되며 모든 사건 해결의 주도권도 정조에게 넘어 갔다. 여기에 비운의 권력자로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홍국영에게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에게 부여된 어마어마한 권세를 잘 못 사용하는 방법론적 문제로 풀어간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던 홍국영이란 캐릭터의 호감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홍국영이란 인물을 움직여온 기본 전제인 개인의 욕망은 급격히 약화시키고 정조를 향한 굳건한 충심이란 최소한의 방어선을 구축한다. 이 때문에 홍국영이 누이를 후궁으로 들이라는 혜경궁 홍씨(견미리)의 제안을 수락하고 정순왕후와 손을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서얼들에게 테러를 가한 민주식(정호근)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돌려주는 것은 물론 장태우 대감을 집무실로 불러 임금의 명에 맞서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겠다며 고압적인 행보를 보이는 악수를 두고 있는 것 모두 정조가 개혁정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더 큰 힘을 갖고자 하는 충심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려졌다.
정조 역시 “한순간도 나에게 충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홍승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보필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에게 힘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홍승지는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스스로 배워 나가야 할 것이다. 그는 영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딛고 배우는 것이 있을 거라 믿는다.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려 줄 것”이라며 흔들림 없는 신뢰를 보임으로서 세도가 홍국영의 행보에 한계를 그어 놓는다.
결국 충심과 신뢰로 단단하게 얽힌 이들 관계에 균열을 만들어내기 위해 총대를 멘 캐릭터는 원빈 홍씨가 되었다. 실제 역사에선 홍국영의 개인적 욕심으로 인해 13세의 어린 나이에 입궐해 1년만에 병사하지만 월화사극 ‘이산’에선 자신의 위회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악수를 두다 오빠 홍국영을 진흙탕 속에 빠트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홍국영의 행보가 이산의 든든한 두뇌 역할을 자처해 온 명민한 캐릭터의 특징에 반하는 우둔한 선택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또 정조를 향한 홍국영의 변치않는 충심을 감안한다면 주군의 평생 동반자로서 누구보다 온화한 인품을 지녔던 효의왕후(박은혜)에게 동생의 허물을 가리기 위해 그토록 쉽게 사건의 모든 책임을 전가시켜려 했다는 것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덕분에 홍국영은 물론 이 사건에 억지로 끼워 맞춰진 몇몇 캐릭터의 성격 마저 함께 흔들렸다.
홍국영의 자백으로 모든 사건의 전모를 알게된 후에도 관용을 베푼 정조. 그가 미행길에 나섰다 그를 조총으로 저격하려한 암살 시도가 감행된 후 벌어진 홍국영과의 갈등 역시 억지스런 일면이 있다. 왕의 암살 시도가 일어났다는 것은 나라의 근본을 위협하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홍국영이 정조의 안위를 지키고자 다소 무리수를 둔 것만을 나무라는 정조의 태도가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 속에서 개인의 욕망으로 인해 궤도를 이탈하며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을 안고 실권했던 홍국영을 정조를 향한 굳건한 충심 안에 가둬둔 채 비운의 권력자로 예정된 몰락의 길을 걷도록 종용한 월화사극 '이산'의 선택은 매끄럽지 못 한 이야기의 얼개로 인해 캐릭터의 매력마저 반감시키는 아쉬움을 낳았다.
조은영 helloey@newsen.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en@newsen.com
손에 잡히는 뉴스, 눈에 보이는 뉴스(www.newsen.com)
copyrightⓒ 뉴스엔.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