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선 감독 인터뷰

  : 오늘은 어떤 장면을 찍고 있나.

고동선 : 세도와 풍운이 남산에서 30년 만에 재회하는 장면을 찍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황제 슈퍼에서 대구의 아버지이기도 한 풍운과 메리가 조우하는 장면을 찍었다.

: 촬영의 중심 장소가 남산이다. 원작에는 없던 장소인데.

고동선 : 남산이 서울 한 가운데 있는 산 아닌가. 굳이 해석하자면 서울의 정신적인 상징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런 남산을 지금 세도 같은 사람이 차지하고 있다는 거다. 세도의 반대편에 있는 메리가 남산의 한옥집에 살고 있다는 것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원래 시놉시스에는 메리네 집안은 대대로 동학혁명이라든가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든가 이런 식으로 남 도와주고 손해만 봤고, 세도네 집안은 임진왜란 때부터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했다는 설정도 있었다. 그런 둘 중 어느 쪽이 좋은가, 무조건적인 성공보다 떳떳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하는 게 드라마의 테마 중 하나다.

: 남산을 비롯한 대부분의 촬영지가 서울 같지 않은 여유로움이 넘친다. 대구의 선배가 사는 옥탑방도 힘들다기 보다는 한적하고 여유롭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고동선 : 정신적으로 여유롭고 물질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다. 김인영 작가하고도 처음에 얘기를 했던 게, 요즘 성공 지침서들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성공할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인드가 있지 않나. 거기에 다른 생각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커스나, 대구 같은 백수, 어려운 환경에서 노력하는 메리를 등장시켰다. 드라마를 하면서 가난의 미학, 오색찬란한 가난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는데, 가난이라는 게 꼭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슬픈 것만도 아니고, 짜증나는 것만은 아니다. 가난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적 바탕 같은 거다. 가난에서 올바른 가치관이나 따뜻한 마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자신의 성장의 기반 같은 게 생긴다.

원래는 홈 드라마, 하다보니 튀는 드라마

: 그러면 당신의 청춘은 어땠나.

고동선 : 취직이 안 되서 백수 생활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가난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돈은 없고, 기성세대에 눌려 지내고 열등감을 느끼고. 그런 것들은 청춘들이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 그런 청춘을 표현하는 방식이 판타지다. 원작은 더 거칠고 현실적이었는데.

고동선 : 인생에 대한 낭만주의다. 낭만주의는 굶어도 힘내면 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잘 될 수 있다랄지, 사랑으로 많은 걸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달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성공 지침서라는 건 전부 현실 아닌가.그런 점에서 <한심남녀 공방전>은 리얼리즘이지만 <메리대구 공방전>은 좀 더 낭만주의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갔고, 그래서 판타지가 더 부각됐다. 원작이 참 좋은 점들이 많은데, 원작은 <한심남녀 공방전>아닌가. 우리는 '한심남녀'를 뺀 거다. 이 청춘 남녀들이 돈이 없고 애인이 없다고 해서 한심해 보이지 않고 나름대로 즐겁고 낭만적으로 사는 걸 그리고 싶었다. 한심해 보이는 남녀들이 단순히 한심한 게 아니라 그릇된 방법으로 성공하고 사는 사람들이 한심한 것 아닌가.

: 한국 드라마의 현실에서 일상속의 판타지를 한다는 것이 어렵지는 않나.

고동선 : 어렵다. 이 드라마의 스타일이 낯설어 보인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온가족이 보기 위한 드라마로 기획됐는데 (웃음), 하다보니까 튀는 드라마가 돼버렸다. 굳이 따지자면 어려운 부분이 거의 없는 드라마인데 낯설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데 리얼리즘이다, 현실적이라는 말이 무엇인가. 어떤 장소나 상황이나 이런 것들만 현실적이고, 가난한 여자가 부잣집 남자와 결혼하는 게 현실적인가. 우리는 감정도 오버되고 판타지도 있지만 드라마의 근간이 되는 정신이나 진정성은 더 현실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번 사실을 추구하기 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고, 진실을 추구하려면 가끔씩 사실이 요약되고 비약되거나 현실의 특징적인 부분들이 두드러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호학과 심리학의 상징을 드라마에 도입하고 싶다

: 일정한 내러티브보다는 튀는 에피소드들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도 인상적이다.

고동선 : 그건 내 인생관이다. 난 앞뒤 정황이 촘촘히 맞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의 연결은 계속 추구하되, 상황의 비약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난데없이 돌멩이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는 게 인생 아닌가. 그래서 약간 튀어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인생 자체가 튀어 보이는 부분이 있다.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되기도 하고,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될 때도 있고.

: 세도라는 캐릭터가 과거를 괴로워하면서 자신만의 방에서 나무위에 눕는 컷이 인상적이었다. 캐릭터를 에피소드나 대사 대신 영상만으로 설명하는 장면이 종종 있는 것 같다.

고동선 : 나는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정신분석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대학 때 기호학과 심리학을 배웠었는데, 드라마에서도 그런 상징을 도입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인간의 겉모습과 속에 있는 모습이 합해져야 캐릭터가 되는 거니까.

: 배우들의 연기는 어떻게 끌어냈나. 과장된 연기를 끝까지 끌고 나가는 연기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 같은데.

고동선 : 이렇게 얘기를 했었다. 만화 같은 드라마를 해보자. 영상에 손질을 해서 만화적인 연출을 하는 게 아니라 인생에 관한 관점부터 구성이든 내용이든 만화 캐릭터처럼 특징적인 것을 부각해서 가보자. 그래서 촬영도 남산처럼 낯설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곳에서 하고 의상도 연극무대 의상처럼 입고, 연기도 연극적으로 연기를 해보자고 했다.

내 꿈은 말이 통하는 상식적인 사회

  : 만화적이라고 했는데, <달콤한 스파이>는 스파이물, <메리 대구 공방전>은 무협소설이 등장한다. 장르물을 좋아하나.

고동선 : 그건 아니다. 재밌는 드라마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드라마 콘셉트가 나온 것이지 이게 어떤 장르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상상을 즐기니까. 있는 그대로를 다 묘사하는 것이 드라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그러면 어떤 작품들을 즐기나.

고동선 : <로미오와 줄리엣>, <포레스트 검프>, <매트릭스>처럼 대중적이고, 아주 쉬운 이야기 속에 상징성을 담는,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음악으로 치면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같은. 슬픈 약속 같은 느낌이 있으면서도 경쾌하지 않은가.

: 메리와 대구 모두 꿈이 있다. 지금 당신의 꿈은.

고동선 : 나는 좀... 말이 통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말이 서로 통하지 않고, 목소리 큰 사람들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퍼뜨리고 다닌다. 예를 들어 방송에서 신문에서 무조건적인 성공을 떠드는 세상이 과연 말이 되는 건가, 그게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건가, 뒤돌아보지도 않고 성공을 위해 뛰는 게 옳은 건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우리는 아직 어거지를 쓰건 떼를 쓰건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마인드가 아직도 있는 것 같다. 상식적이고 지적인 기반이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말해 달라.

고동선 : 가족, 자유, 상호존중, 평등.

(인터뷰) 강명석 ( 기획위원)

(사진) 이원우 mcqueen@t-f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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