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의 아버지. 거산(巨山)병원 이사장. 국내 최고의 외과의였던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이다. 밖에서 보자면 대단한 인물이고, 존경 받아 마땅한데 어찌나 참견하기 좋아 하고, 따지기 좋아하고, 꼬장꼬장한지 옹졸하고, 편집증적인 면까지 있다. 한 마디로 아내에게는 좁쌀영감이다. 술. 담배. 여자. 그 외 모든 잡기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남아도는 에너지로 집안대소사에 시시콜콜 참견하며 제사에 콩시루떡을 맵쌀로 해라, 찹쌀로 해라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내 진수자가 그릇 사는 데까지 따라가, 문양,크기까지 까탈스럽게 따지며 참견한다. 남 보기에는 완벽하고 다정해 보이지만, 진수자에게는 징그럽게 지긋지긋한 남편이다. 집에서 새를 기른다. 새벽마다 신선한 배춧잎을 마련해 새 먹이로 주는데, 하루라도 새로 산 배추가 없을 때면, 집안이 벌컥 뒤집어진다. 아침에도 십 이첩 반상으로 밥을 먹어야 하고, 국만 있거나 찌개가 없으면. 혹은 찌개만 있고, 국이 없으면 난리가 난다. 손수 일주일치씩 식단 짜서, 냉장고에 붙여 놓는 것은 기본이고, 점심 도시 락까지 싸서 병원에서 먹는다. 유진의 어머니. 좀스러운 남편한테 시달려 인생이 괴롭다. 남의 손에는 정성이 없다고, 일하는 사람을 못 두게 해 아직도 삼시 세 때 전기밥솥도 아닌 돌솥에 밥하고, 아침부터 십 이첩 반상을 차려낸다. 아직도 도시락, 그것도 아들 도시락도 아닌 남편 도시락 싸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야채 한 찬합, 과일 한 찬합. 반찬 한 찬합. 간식으로 낸 소 양즙까지, 손에 물마를 날이 없다. 유진이만 아니었다면, 거산병원 사모님이고 뭐고 당장 이혼을 했으리라. 그래서 성격이 삐뚤어졌을까? 입만 열면 남 험담을 한다. 남 험담을 해도 병원장 사모님답게 교양은 갖추고 은근슬쩍 돌려 치는 센스는 가졌다. 구박 받는 아내 티 안내느라, 얼른 남편 출근하면 떨쳐 입고 방숙자와 골프치러 다닌다. 때때로 차가 밀려 저녁을 제 때 못 차려낼 것 같으면, 유진에게 도움을 청 한다. 아들 유진이 삶의 보람이오, 기쁨이다. 해서, 며느리 고르기에 열중이다. 처음부터 가출 전력까지 있다는 문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깜찍한 문현이와 결혼했으면 바라고, 그토록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부드럽고 착한 내 아들이 결혼문제에만은 고집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