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연예지망생들의 달콤한 사랑이야기로 끝나기 어려운 청춘드라마… 춤과 노래의 현실에 존재하는 유치함과 비정함이 발랄한 대사에 섞이네
<별은 내 가슴에>처럼 단순했으면 좋을 뻔했다. 냉정한 스타를 사랑해 결국 마음을 열게 하는, 그래서
잠실운동장처럼 넓은 곳에서 키스로 마무리하는 평범한 여성의 고군분투. 그렇게 별이 내 가슴에 달려와 푹 잠기는 시절이면 얼마나 좋을까나. 그사이
10년이 흘렀다. <별은 내 가슴에>는 팬픽 속에서나 존재하는 얘기. 노래방 가서 5년 안 된 거로는 부를 노래가 없는 사람도,
10년 동안 나온 가수로 샤크라와 베이비복스만 아는 정신 사나운 사람도 그 세계의 급변은 알고 있다. 기타 치고 노래 부르던 낭만은 구닥다리다.
중학교 때부터 밤낮없이 춤과 노래, 심지어 개인기와 개그도 연마해야 한다.
몸매도 특급이어야 하고 얼굴이 조막만 한데 눈·코·입이 오뚝하고 도톰하게 박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버 더
레인보우>다. ‘오버’는 저 너머 손 닿을 길 없는 곳에 있다. 그래서 고군분투는 무지개 좇기다. 이 어쩔 수 없는 숙명적 드라마를
완수하는 이들도 정해져 있다. 어른들의 세계에 뛰어들었으나 어른은 아닌 어린애들, 그래서 어른이 끊임없이 뭔가를 가르쳐야 하는 어린애들, 어른
흉내를 내는 어린애들, 그리고 꿈을 믿는 바보들, 바로 청춘들.
김옥빈이 맡은 악역, 희수의 악역스러움
<오버 더 레인보우>(문화방송 수·목 드라마, 밤 9시50분)는 가요계의 인물 군상을 대변할 수 있는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미 오버의 무지개 끝 구름에서 낚시질을 즐기는 ‘스타 렉스’(환희)가 있고, 렉스를 바라보며 컨디션을 가늠하고
보약 지어줄 태세를 갖춘 ‘빠순이’ 마상미(서지혜)가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비극을 뒤로하고 스타를 향한 꿈을 키우는 ‘외국삘’
정희수(김옥빈)가 있고, 감정적인 이유로 춤을 배우고 감정적인 이유로 그만두기도 하는 깡패 출신 권혁주(지현우)와 그의 팀 갱스터가 있다.
설정은 ‘지대로’ 전형적이지만 풀어나가는 방식은 드라마적 관습에서 멀찌감치 나갔다. 2부에서 이미 2년 세월이
흐르도록 하고, 주인공 상미는 3부가 되어서야 등장한다. 희수는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악역 주연이다. 초반 자존심을 걸고 스타 시스템에
반항하는 듯 보이지만 딱 ‘스타 시스템’에 필요할 만큼만 반항적이었음이 드러나는데, 심지어 일부러 그랬다는 뉘앙스도 풍긴다. 데뷔가 결정되는 것
또한 다른 매니지먼트사에서 온 제안을 거절해서였다(그 데뷔는 단지 옷걸이가 좋아서 이루어진 ‘섹시 콘셉트’ 립싱크 가수였다). 데뷔를
결정하자마자 남자친구를 모른 체하고, 렉스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자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연기도 한다.
편집과 촬영 역시 막대본이 아님을 여실히 드러냈다. 뉴질랜드에서 펼쳐지는 ‘광대한’ 스토리라인과 한국의 지질한 인간
군상은 뉴질랜드 편의 희수가 “가이드 해줄까”라는 대사 다음에 서울의 ‘관광나이트’를 배치하는 식으로 짜맞췄고, 교통사고 뒤 렉스의 프라이드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온 선영(박희진)과 상미가 한창 이야기하는 전경에 커튼을 닫는 컷이 이어지며 렉스 사무실로 이동한다. 뒤쪽에서 혁주
어머니가 희수를 불렀는데 앞쪽에서 혁주 아버지(임하룡)가 혁주에게 속삭이는 내용이 오버되다가 다음 장면에서 희수는 “네 알겠어요” 하며 일어서는
장면도 재미있다.
하지만 점점 공들인 장면들은 줄어든다. 무엇보다 춤 장면이 사라져간다. 초반에 렉스 백댄서(백댄서가 아니라
댄서라지만) 데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바로 뒤풀이 자리로 옮겨가는 것은 그전에 연습 장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 치더라도, 9부·10부의
강원도를 돌며 ‘유랑극단’식 공연을 펼칠 때 제대로 편집된 공연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아쉬웠다. 결국 가요 프로그램의 펑크난 자리를 때우는
공연이 혁주가 감기로 어슬하다는 이유로 끊어져버릴 때는 화가 날 지경. 1부의 피날레를 장식한 혁주의 ‘나이키’ 이후로 춤은 그 절정을 보여주지
못한다. 역시 초반 렉스의 백댄서로 오디션을 받던 갱스터가 춤을 추고 이후 렉스가 “화려하게만 짠다고 다 되는 건 아냐. 완급 조절이
있어야지”라며 맞받아치며 춤을 출 때의 긴장감 역시 사라진다. 춤과 노래가 없어진 자리를 메우는 건 사랑 이야기다.
웃고 있지만 냉혹함이 번들거리는…
사랑을 풀어내는 대사도 밉지는 않다. 사실 후반의 훌륭한 장면들은 대본상의 설정들이 모두 만들어냈다. 상미의 ‘볼
볼록’ 신이 그렇고 렉스가 자신을 납치했던 로드매니저와 화해하는 방식이 그렇다. 주고받는 대사는 SBS <일요일이 좋다> ‘X맨’의
‘당연하지’처럼 발랄하게 튄다. ‘당연하지’는 상대방의 질문에 유유자적하게 “당연하지”라는 대답을 해야 하는 심리전이다. 그 내용에 공감해서
‘당연하지’가 아니라 충격받지 않고 반격할 수 있는 여유가 넘쳐야 하기에 ‘당연하지’다. 렉스는 “너 나를 주인공으로 소설도 쓰냐? 그
소설에서는 내가 너한테 키스도 해주고 하냐?”라고 팬인 마상미의 속을 긁고, 마상미는 슬럼프에 빠진 렉스에게 “이번 앨범 지루했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희수는 옛날에 연인 사이였던 혁주를 찾아가 “우리 친구 맞지?”라고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한다. 헤어진 뒤 힘든 혁주를 좀 위로해주라고
떼밀려서 찾아간 희수는 “좀 이기적이 돼봐”라고도 말한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달콤함 역시 들여다볼수록 ‘당연하지’ 같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닌, 냉정함과
냉혹함이 번들거린다. 실제 연예계가 그렇다니까. 드라마의 딜레마도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연예계의 유치찬란함이 폭로되고 꿈을 좇는 그들도 그
비정함을 깨달은 지금, 연예계의 성공이 최대 목표가 될 수 없어졌다. 그 무지개를 좇아 여기까지 왔는데 사랑 이야기로만 끝내버리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도 그렇지만 드라마도 <별은 내 가슴에>처럼 단순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한겨레 구둘래 기자(anyone@hani.co.kr)
2006.09.12
(0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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