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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매서운 '악녀 신드롬'

흰색은 검은 바탕에서 도드라지는 법. 드라마의 주인공도 그에 필적하는 악역이 열연해야 더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을 파멸의 길로 유혹하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나 여자 주인공에게 고난의 길을 선물하는 악녀들은 특유의 불가항력적인 마력을 앞세워 주인공에 버금가는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다. 해를 넘긴 안방극장에는 악녀본색(惡女本色)을 드러내는 여배우들의 활약이 한층 눈길을 끌 전망이다. 매서운 치맛바람으로 안방극장에 ‘악녀 신드롬’을 전염시키고 있는 여배우들을 살펴본다.

◆악녀본색에도 ‘짬밥’이 있다?

모든 드라마에는 악녀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시청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공감어린 열연을 펼치는 악녀들은 따로 있다. ‘겨울새’에서 돈만 밝히는 시어머니로 출연하는 박원숙. ‘이산’에서 영조를 축출하기 위해 애쓰는 김여진과 성현아. 그리고 ‘조강지처 클럽’에서 파렴치한 불륜녀로 열연하는 변정민 등 악역으로 활약 중인 대표 주자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30대 이상의 중견 연기자들이다. 물론 젊은 여배우들이 악역으로 출연하는 일도 다반사지만 화제 몰이에는 역부족이다.

이같은 상황이 빚어진 데는 악역 연기가 의외로 깊은 내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매서운 눈빛과 표정연기. 그리고 매서운 독설들을 자연스럽게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외모보다는 실력이 우선이다. 연기력이 부족한 신인보다는 카리스마가 뛰어난 중견 여배우들이 악역에 적합하다. ‘천국의 계단’에서 악역으로 출연했던 김태희가 눈만 부릅뜨고 소리만 버럭지르는 단순한 연기로 아쉬움을 샀던 모습이 방송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많던 캔디들은 어디로 갔을까?

최근 안방극장에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는 캔디형 여주인공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춰버렸다. 오히려 ‘그 여자가 무서워’의 유선처럼 자신을 버린 연인에 대한 복수욕에 불타는 독한 여성들이 주인공 자리를 꿰찰 정도다. ‘천하일색 박정금’의 한고은 역시 남자친구들을 밥먹듯 갈아치우는 품행 불량의 캐릭터다. 심지어 오는 18일부터 방영될 KBS ‘싱글파파는 열애중’의 강성연은 여성에게는 불문율이나 다름없는 모성애마저 헌신짝처럼 저버린다.

예전이라면 시청자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할 악녀들이 드라마 속에서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뭘까.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면서 시청자들의 가치관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바보처럼 순진하고 착한 여주인공보다는 다소 악역에 가깝더라도 당당하게 자기 것을 챙길 줄 아는 현실적인 여성상에 큰 매력을 느낀다.

◆악녀는 연기력 논란의 꼬리표를 떼는 지름길!

최근 종영한 SBS ‘황금신부’에서는 두명의 미녀 스타가 악역으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공현주와 최여진으로 모두 2001년 슈퍼모델 대회에 출전한 모델 출신 탤런트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두 사람은 특히 모델 출신으로 데뷔 초부터 8등신의 늘씬한 몸매와 얼굴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연기력에 있어서는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함께 나눴다. 그러나 ‘황금신부’에서 실감나는 악역 연기를 통해 연기력 논란에 대한 꼬리표를 떼어내면서 안방극장에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힐 수 있었다. 최여진의 경우 악역 연기를 실감나게 펼치기 위해 독한 정신으로 무장하느라 두통약을 상비하고 촬영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악녀 연기는 미모의 여배우들에게 연기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도전이 되기도 한다.

2008-02-12 (11: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