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관리자 | 조회: |
| 눈빛 카리스마 버리고, 속터지는 답답이가 돼버린 오빠 '김민종' | |
|---|---|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고 양부모의 손에서 자란 사내. 그의 목표는 오로지 키워준 양부모에게 은혜를 갚고,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뿐이다. 양부모가 변호사가 되라고 하면 되어야 했고, 박정금(배종옥)을 사랑하지만 다른 여인과 결혼하라고 하면 사랑도 접어야 했다. 나이는 서른여섯이나 먹었지만 자신의 생각은 손톱만큼도 표출하지 않는 인물, 그래서 시청자들이 답답함에 가슴을 쥐어뜯게 만드는 인물이 MBC 주말드라마 <천하일색 박정금>의 한경수다. 과연 누가 답답함의 극치를 가장 잘 연기해낼까. 감독이 찾은 해답은 김민종(37)이었다. 터프가이, 잘 생긴 옆집 총각 등 기존의 모습을 버리고 원래 답답한 사람이었던 양 옷을 바꿔 입은 김민종을 <천하일색 박정금> 촬영이 한창인 일산의 세트장에서 만났다. “경수라는 인물을 보기 답답하시죠. 연기하는 저도 답답해요.” 양부모에게 갖은 강요를 당하면 소리라도 지를 것 같은데 그의 대사는 오히려 낮은 톤으로 잦아든다. 오죽 답답했으면 스테프들은 “김민종의 경수 연기를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답답함의 극치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왜 김민종은 30대 후반, 중년을 목전에 둔 중요한 시점에서 하필이면 답답한 경수 역할을 택했을까. “출연 제의를 세 번이나 사양했어요. 이미 영화에 출연하려고 마음먹었거든요. 어떤 영화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정말 매력적인 역할이었어요. 영화에 필이 딱 꽂혀 있었는데 이형선(<천하일색 박정금> 연출자) 감독님의 집요한 설득에 넘어갔죠.” 두 작품을 놓고 갈림길에 선 것은 비단 이번뿐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배우로서의 욕심은 가슴에 묻어둬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게 다 끈끈한 인간관계 때문이었다. 거절하러 가서 술자리가 마련되면, 한 잔 하다가 정에 못 이겨 수락해버리는 식이었다. “제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아요. 신인의 마음으로 가리지 말고 주어진 것을 하자는 생각은 아직 변함없거든요. 다만 나이가 있는 만큼 기분에 흔들리는 것은 좀 자제해야죠. 제 모습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잖아요.” 김민종은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았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 동안 영화배우에서 가수로, 또 탤런트로 모습을 바꿔가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그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특별한 원동력은 없어요. 그냥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죠. 즐기면서요. 프로의식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아요.” 음악활동을 쉬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음악을 즐기기는 하지만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몇 년째 손을 놓고 있는 거죠. 음반을 내면 콘서트를 자주 해야 하는 데 왕성한 활동을 보여드릴 자신이 없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보다 잘할 자신도 없고요. 하지만 음악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않았으니까 언젠가 좋은 곡으로 다시 무대에 설 날이 있을 겁니다.” 20년간 긴 호흡으로 활동하다 보니 팬들과의 에피소드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데뷔할 당시 학생이었던 소녀팬들은 30대가 됐고, 아줌마의 모습으로 그를 찾는다. “아이와 함께 촬영장에 오셔서 ‘오빠’라고 부르시면 친했던 때처럼 응대를 해야 할지, 존대를 해야 할지 헷갈려요. 분명히 얼굴은 아는데 조심스러워진다고 해야 할까.” 얼마 전에는 중매쟁이 역할도 했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촬영장에 쫓아다니다가 저한테 혼도 많이 났던 분인데, 벌써 서른두 살이랍니다. 얼마 전 그 분에게 제 친구를 소개하면서 결혼하면 제가 사회를 봐준다고 했는데 진짜 결혼을 한답니다. 이게 사는 재미 아닐까요. 팬들하고 같이 나이를 먹어가다 보면 앞으로 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아 기대됩니다.” 어느덧 인터뷰 시간이 다 지나고, 촬영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받은 김민종. 트렌치코트의 벨트를 질끈 묶고 일어서는 그에게서 인터뷰 내내 느껴졌던 활기찬 표정과 목소리는 이내 자취를 감췄다. 쳐진 어깨에 우수에 젖은 눈. 배우 김민종은 이미 <천하일색 박정금>의 답답한 한경수로 돌아가 있었다. 허정헌기자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08-03-11
(21: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