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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김민종│‘오빠’는 여전하다

이 남자, 여전하다. 몸에 딱 맞는 정장도 여전하고, 짙은 쌍커풀의 큰 눈도 여전하며, 그 눈에 연민과 혐오와 안타까움이 순식간에 그렁해지는 것도 여전하다. 그리고 그 여전함은 어떤 절박함이다. 박정금과 사공유라 사이에서 가까스로 무게 중심을 잡고 있는 한경수의 절박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 남자가 바로 그 시절의 ‘오빠’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김민종 얘기다.

스타라는 이름 안에서 성장한 20년

<느낌> 등을 통해 청춘스타 이미지를 완성한 김민종은 그 때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변하지 않았다.

주말드라마를 새로 정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MBC의 <천하일색 박정금>에 출연 중인 그는 올해로 데뷔한 지 20년이다. 청자켓을 입은 십대의 반항아였던 그는 그 동안 캐주얼이 잘 어울리는 대학생으로, 고급 승용차를 모는 실장님으로, 깔끔한 정장이 잘 어울리는 유부남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변화의 과정에서 김민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민종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 여전함은 TV 앞에 앉은 30대 여성들(과 일부 남성들)에게 한 시절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꽤 놀라운 일이다. 바로 지금이 2008년이라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1988년 최재성과 최수지라는 당대의 톱스타가 출연한 청춘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로 데뷔한 김민종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있잖아요, 비밀이에요>(1990)로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등극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 비치된 스타들의 얼굴이 프린트된 책받침의 인기가 곧 대중성의 척도이던 시절, 김민종은 십대 여학생들의 소지품을 가장 많이 장식하던 ‘오빠’였다. 브라운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출연한 초콜릿 광고의 삽입곡을 부른 것을 계기로 가수로 데뷔한 그는 1994년, 손지창과 이정재, 우희진과 함께 윤석호 감독의 드라마 <느낌>으로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김희선과 출연한 1998년 드라마 <미스터 Q>로 차츰 성장해나가는 사회 초년생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사실 김민종을 설명하는데 ‘스타’라는 말 외에 다른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그 말은 이중적이다. 스타는 필연적으로 시장 안에서 탄생하고 빛나기 때문이다.

영원한 오빠, 부활하다

그는 최근에는 스타로서 자신을 희화화 하는데도 주저하지 않는 편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사후적인 평가지만, 김민종의 필모그래피를 하나로 묶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 <삼인조>(1997) 같은 영화나 <머나먼 나라>(1996)나 <고스트>(1999)같은 드라마로 색다른 이미지를 선보이긴 했지만 그것이 배우로서의 정체성에 일관된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김민종이라는 스타의 시장성은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종려나무 숲>(2005)과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2005) 이후 그의 활동은 조심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케이블채널 tvN의 장편드라마 <하이에나>(2006)와 MBC의 <천하일색 박정금>(2008)으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가 남다르게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데뷔 20년을 맞이한 그는 여전히 대중적인 스타지만, 지금 그의 스타성을 논하는 것은 10년 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어떤 작품의 캐릭터보다는 CF에 출연하던 김민종이나 손지창과 함께 노래하던 ‘더 블루’의 김민종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그는 한 시절에 대한 기억을 거슬러 다시 여기에 있다. 주말 저녁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등장하는 한경수, 아니 김민종은 여전하다.

<천하일색 박정금>은 스타일에서는 파격적이지만 주말극의 관습을 철저히 따라가는 드라마다. 배종옥이나 손창민 같은 중견 스타들은 기존 이미지로부터 과감하게 탈주하고 있지만, 김민종은 오히려 기존의 이미지를 다듬고 있다. 그가 여전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외모가 90년대 후반과 비교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하다. 그의 여전함은 이미지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브라운관을 통해 김민종을 탐하는 시청자들은 그를 드라마의 캐릭터보다는 ‘오빠’ 김민종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신기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여전하다. 그리고 그 여전함이야말로 급변하는 대중문화 시장에서 스타성이 유지되는 근거다. 대중문화 시장의 감수성은 수시로 변화하지만, 정작 대중문화의 수용자들은 그런 변화에 관대하지만은 않다. 시장과 대중의 감수성은 거의 항상 대립한다. 그런데 그런 긴장이야말로 대중문화가 작동되는 원리다. 김민종이라는 ‘스타’가 지금 환기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그 흥미로운 역설이다.

2008-04-08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