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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교양] 「PD 수첩」15주년 특집 방송

「PD 수첩」15주년 특집 방송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향하여: 「PD 수첩」 1990년 - 2005년>



  
 
◎ 방송 : 2005년 5월 31일 (화) 밤 11시 5분 ~ 밤 12시 15분

  1990년 5월 8일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로 첫방송을 시작한
 「PD 수첩」이 방송 15주년을 맞아 5월 31일(화) 밤 11시 5분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향하여 : PD 수첩 1990년-2005년〉을
  방송한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 최초로 15년 간 연속 방송된 「PD 수첩」은
  방송에서 기피되거나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했던 금기와 성역의 주제를 과감히 다뤄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켜 왔다.
 「PD 수첩」을 거쳐 간 62명의 PD들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 사회의 거악과
  당당히 맞서며 「PD 수첩」과 함께 했다.

  ‘소외된 이웃과 부조리 없는 사회를 위하여’라는 기획의도로 방송 630여회에 이르기까지
  열정과 용기로 세상과 맞서온 「PD 수첩」이 5월 31일(화) 방송을 통해 지난 15년을 돌아보고
  미래의 30년을 준비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 관련 링크 :
<PD수첩> 홈페이지 | 시청자 의견


* 주요 방송 내용

▣ PD수첩 때문에 감옥 갔던     손석희 아나운서

문화방송 노동조합은 1992년 전무후무한 50일의 장기파업을
벌였는데 당시 노조 간부로 파업을 이끌었던 손석희 아나운서는
회사에 투입된 전투경찰에 체포돼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된다.
생애 최초의 감옥 생활이었다. 파업의 배경엔 해고된 상태이던
안성일 노조위원장과 김평호 사무국장의 복직 문제가 있었다.
두 사람의 해고를 촉발시켰던 것은 바로 90년 9월 18일 방송된
PD수첩 <농촌은 뿌리, 도시는 꽃 -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편.
방송 즈음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 고위급 회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북한 대표단이 남쪽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방송을  연기해 줄 것을
요구하는 최창봉 사장에 맞서 두 사람이 사장실 앞에서 격렬히
항의했는데 그것이 해고의 빌미가 된 것이다.
사장의 연기 요구를 거부했던 것은 그 이면에 정치권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부의 부당한 간섭이 있을 경우
전 사원이 맞서 싸울 수 있는 공영방송에 대한 강력한 의지,
그것이야말로 PD수첩이 지난 15년간 내외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말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 첫방송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

▣ 시사고발 프로그램 최초, 15년 연속 방송

「PD 수첩」의 첫 아이템은 1990년 5월 8일 방송된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이다. 퇴직금과 한달 치 월급 3억원을
체불한 채 본국으로 도망간 미국인 지사장과 미국 본사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한국 피코 노동조합 아줌마들의 투쟁을 그렸다.
이 후 15년 동안 PD수첩은 흔들림 없이 630여회를 방송해왔는데
이는 국내 시사프로그램으론 유일한 기록이다.(1983년에 시작한
추적 60분은 1986년 막을 내린 뒤 94년 다시 같은 제목으로 방송 시작)

▶ 1995년 - 2005년 방송된
  「PD 수첩」주요 내용

▣ 금기와 성역을 허물다

<분단 비극의 현장 금정굴 열리다> (1995)
<위기의 한국 신문 개혁은 오는가 1, 2부> (1998)
<삼성 황태자 이재용, 재산 수조원의 의혹> (2000)
<미군 전차와 두 여중생 그 죽음의 진실> (2002)
<한국의 권부 4부작-청와대, 검찰, 국정원, 국회 다룸> (2002)
<불패 신화, 무노조 삼성> (2003)
<친일파 4부작> (2004)
<문제는 지도층이다> (2004)

PD수첩은 그간 방송에서 기피되거나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했던
금기와 성역의 주제을 과감히 다루어 왔다. 그리고 그 때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 사회의 거악(巨惡)과 당당히 맞서는 태도야말로 그간
PD수첩을 거쳐 간 62명 PD들이 만들어낸 자랑스런 전통으로서
다른 시사 고발 프로그램들과 PD수첩을 구분지우는 가장 큰 특징이다. 

▶「PD 수첩」보도, 그 이후

▣ 소쩍새 마을의 일력 스님, 그는 지금 어디에 살까?

PD수첩의 특종 보도로 추악한 뒷모습이 드러나면서 전 국민을
놀라게 했던 장애인 및 부랑아 공동체 ‘소쩍새 마을’의 일력스님,
강산도 변하게 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취재팀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는 지금 한줌의
흙으로 변했다고 한다. 중국을 떠돌다 약물중독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만 것.

90년 10월 30일에 방영된 <우리 아이들의 북한 생각 -
“부모를 동무라고 부를 거예요”>편에선 초등학생들이 생각하는
북한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도록 했다. 만일 지금
같은 학년 교실을 찾아가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흥미로운 결과가 방송을 통해 전해질 예정이다.   

첫 방송의 주인공이었던 피코 아줌마들, IMF당시 월세를 낼 돈이 없어
전 가족이 서소문공원에 텐트를 치고 살았던 이모씨 가족 등
PD수첩에 소개된 화제인물들의 근황을 소개하고 PD수첩을
모니터해 대통령께 보고했던 윤여준 16대 의원(청와대 정무비서관,
공보수석 비서관 역임)을 만나 왜 PD수첩이 골치덩이였는지
그 이유도 들어본다.
 

▶ 15주년 특집 여론조사

- “소득 상위 계층일수록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하고 싶어해”

PD수첩이 전국의 성인남여 1003명에게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란 질문을 던졌다.
하위계층(월소득 150만원 이하)에 속하는 사람들은 14.4%가
그런 적이 있다고 말한 반면 상위계층(월소득 300만원 이상)은
2배 이상인 32.9%가 그렇다고 답해 큰 차이를 보였다.
대한민국 국민(國民)임을 포기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정치에 대한 실망과 교육문제가 1,2위를 차지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가 3위였다.
15년동안 우리사회의 1)빈부격차, 2)전쟁가능성 3)대미관계의
자주성 4)내 집 마련 가능성이 어떤 변화를 겪었느냐 묻는 질문에
69%의 사람이 빈부격차가 늘었다고 답했고 54%는 내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핵문제, 빈부격차 등에 대한
다양한 설문결과들이 방송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 미래의 30년을 위하여

PD수첩이 지난 15년을 돌아보는 것은 미래의 30년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소외된 이웃과 부조리 없는 사회를 위하여’란 애초의
기획의도는 30년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기, 열정과 용기로 세상과 맞섰던
PD수첩의 정신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 2005년 5월 현재
  「PD 수첩」제작진

프로듀서: 최승호 CP
연출: 조능희, 오상광, 이우환, 전성관, 유해진,
        김만진, 김재영, 김현기 PD
작가: 정재홍, 이소정, 유지연

* 관련 동영상


프로그램명
다시보기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

 

[1990년 5월 8일]

<농촌은 뿌리, 도시는 꽃 -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

 

[1990년 9월 18일]

<우리 아이들의 북한 생각 - “부모를 동무라고 부를 거예요”>

 
[1990년 10월 30일]
장애인 및 부랑아 공동체 ‘소쩍새 마을의 일력스님.’  
[1995년 9월 5일]

<분단 비극의 현장 금정굴 열리다> (1995)
-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양민학살의 물적 증거인 150여기의 유골 발굴

 

[1995년 10월 3일]

<위기의 한국 신문 개혁은 오는가 1, 2부> (1998)

 

[1998년 3월 10일]

[1998년 3월 24일]

<삼성 황태자 이재용, 재산 수조원의 의혹> (2000) 

 

[2000년 12월 12일]

<미군 전차와 두 여중생 그 죽음의 진실> (2002)

 

[2002년 7월 16일]

<한국의 권부 4부작-청와대, 검찰, 국정원, 국회 다룸> (2002)

 

[2003년 1월 7일] 제 1부 : 절대권력, 청와대

[2003년 1월 14일] 제 2 부 : 권력의 시녀, 국민의 영감님

[2003년 1월 21일] 제 3 부 : 음지의 절대권력! 국가정보원

[2003년 1월 28일] 제 4 부 : 무너진 국회, 국민의 대표인가?

<불패 신화, 무노조 삼성> (2003)

 

[2003년 4월 29일] 

<문제는 지도층이다> (2004)
-
고위층 혼맥도(婚脈圖)로 큰 반향 불러일으킴


[2004년 1월 6일] 1부 : 그들은 법 위에 산다

[2004년 1월 13일] 2부 : 지도층은 없다 

<친일파 4부작> (2004)

 

[2004년 1월 27일] 친일파는 살아있다

[2004년 2월 17일] 친일파는 살아있다 2

[2004년 3월 2일] 친일파는 살아있다 3

[2004년 7월 27일] 친일파는 살아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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