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필리핀
영주시 문수면의 작은 시골 마을, 20년 만에 처음 아이가 태어났다.
동네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이 아이는 한국 아빠와 베트남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코시안(한국인과 아시아계 외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2세).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 코시안인 마을도,
아이라고는 오로지 코시안 뿐인 마을도 농촌지역에서는 드물지 않다.
지난해 외국 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은 2만 5천명, 국제결혼 10%
시대를 방증이라도 하듯, 코시안의 숫자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먼 나라로 시집온 국제 결혼 이주 여성들과,
국내에서 신부를 구하지 못해 외국에서 신부감를 데려오는 한국 남성들.
그들이 꾸린 가정은 과연 행복하기만 한 걸까? 그들의 자녀들은 올바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인가? 이 전국의 수많은 국제결혼 가정을 직접 찾아가,
국제결혼 가정의 현주소를 긴급 점검한다.
가난을 견디다 못해 정신을 놓은 엄마, 안젤라
필리핀 여성 안젤라는 한국에 시집오면서 말을 잃었다. 큰 기대를
안고 찾아온 한국 땅이었지만, 정작 그녀가 맞닥뜨린 것은 생활 능력이
없는 남편과 나이든 시어머니, 상상치 못했던 극심한 가난뿐이었다.
그녀의 정신은 점차 황폐해졌다. 급기야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지만,
안젤라는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않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그녀는
오늘도 커다란 겨울 점퍼 속에 몸을 감추고 길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안젤라를 만나기 위해 나주로 내려간 취재진은 그녀의 어린 딸을
만났다. 몸져 누운 할머니, 무기력한 아버지와 함께 환기도 되지 않아
곰팡내가 진동하는 골방에서 자라고 있는 그녀의 여섯 살배기 딸. 취재진을
붙잡고 놓지 않을만큼 아이는 정에 굶주렸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의 정서 상태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불안했다.
‘며느리’라고 어서 저런 게 들어와서!
메리제인은 얼마 전 아이 셋 중 작은 아이 둘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걸핏하면 “필리핀으로 돌아가라”며 욕설을
퍼붓는 시어머니를 견디다 못해 쉼터로 피해 온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의 양육권만 얻을 수 있다면 아이들을
먼저 필리핀으로 보내고, 돈을 조금 벌어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하지만 메리제인 시어머니의 말을 달랐다. 게으르고 살림 꼼꼼하지
못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는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 고집 세고
순종적이지 않은 며느리가 시어머니는 못내 불만이었다고.
국제 결혼 가정이 흔들리는 원인 중 하나는, 문화차이에 의한 시부모와
며느리간의 갈등이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며느리를 ‘게으르다’
‘버릇없다’고 윽박지르는 시부모와, 한국의 가족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진정한 식구가 되지 못하고 겉도는 이방인 며느리들.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그들이 서로의 거리를 좁힐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엄마 보고 싶어-고통 속에 버려지는 아이들
필리핀 여성 플로렌드는 불법체류자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편은
무능할 뿐 아니라 가혹한 폭력으로 플로렌드를 위협했다. 시부모는 플로렌드가
혹여 도망갈지 모른다며 아이가 5살이 되도록 국적 취득에 동의해주지
않았다. 집을 나와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그녀에게 집에 두고 온 아들은
가슴을 저리게 하는 고통이자 살아가는 이유다.
엄마와 떨어져 아빠, 할머니 하고만 살고 있는 수민이는 엄마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품에 달려들어 안기지도 않는다.
엄마는 수민이의 말을 이해하지도 차분하게 들어주지도 못한다. 필리핀에서
온 엄마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둡고 소극적이던
수민이는 1년 전부터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조금씩 밝고 씩씩한 아이로
변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일까? 엄마와의 소통 부족이
불러일으키는 아이의 정서적 불안정, 언어 발달 부진, 학습 장애 등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이 노출되기 쉬운 위험 요소들을 짚어 봤다.
국제 결혼의 함정, 해결 방법은 없는가?
국제 결혼 가정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과제는 언어 차이를
극복하는 것.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지원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주여성 한글교육’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그나마
반가운 일. 이들이 당당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원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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