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박주영 못봤다"

이정신 기자 geist1@imbc.com

- ‘히딩크, 박주영 대표팀 발탁 권고’ 보도의 진실

<히딩크, 박주영을 합류시켜라>... 지난 18일 한 방송사의 스포츠뉴스 기사 제목이었다. 톱기사로 보도된 이 뉴스에서 어깨걸이(DVE) 제목과 앵커멘트는 각각 "박주영을 발탁하라", "히딩크 감독이 박주영의 (성인)대표팀 발탁을 권고했습니다"였다. 내세운 근거 팩트는 당연히 히딩크의 인터뷰였다. <거스 히딩크 / 전축구대표팀 감독>(아인트호벤 감독도 아니고 전축구대표팀 감독이라니...) 이름으로 나간 인터뷰 한글 자막은 "박주영 등 유망주들을 대표팀에 합류시켜 기량을 발전시키는 게 중요합니다"였다. 참고로, 보도된 인터뷰 영어 원음은 "I think it always good to help those players develope well on a national level"이다.

‘히딩크’에 ‘박주영’이다 보니 파장은 컸고, 다음날 아침 한 유력 스포츠신문이 이를 1면 톱으로 '받아썼다'. 축구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즉각 혼란 섞인 반응이 일었다. “히딩크가 박주영을 잘 안다는 거야?” ”박주영 경기를 보기나 했을까?” “유도 질문이 아니었을까?” “본프레레는 뭐야?” 등 ...

하지만 문제의 히딩크 인터뷰 현장에 함께 있었던 나는 조금은 어리둥절했고 한편으론 민망했다. 사실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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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현지시각 12일 오후 1시쯤, 아인트호벤 필립스구장 기자회견장이었다. 올림피크 리옹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하루 앞두고 프리매치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이를 마치고 나오는 히딩크 감독을 한국 언론(방송 3사)들이 잡아 세우고 함께 인터뷰를 한 것이다.

한 방송사 기자가 "(아인트호벤처럼) 한국에도 젊은 선수들이 많은데 박주영을 아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박주영에 관한 히딩크 감독의 영어 답변 전문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Well, I know a little bit of this player although I didn't see him live. I think it always good to help those players develope well on a national level... in the olympic team... in the A team...." (기자의 기억이 아니라 Tape의 기록이다)

히딩크 감독은 박주영의 실제 활동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기량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모를 수밖에 없다. 그저 여기저기서 박주영 얘기를 들어서 조금 알뿐이다.(실제로 지난달 세계청소년대회 조추첨자로 히딩크가 참석했을 당시, 한국 특파원들이 히딩크에게 한참 뜨고 있던 박주영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대답은 “들었긴 했다”는 것이다.) “I think it always good to...”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보편 타당한 일반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유망주들은(those players) 국가적인 차원(on a national level)에서 지원해주는 게 항상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예로 든 게 "올림픽 팀에서나 A대표팀에서..."였다. 박주영을 보지도 못한 히딩크 감독의 '유망주 국가 육성론'은 최선이자 당연한 답변이다.

문제의 보도에서 “those players... on a national level"을 “박주영 등 유망주를... (성인) 대표팀에 합류시켜.."로 의역한 것은 자의적인 해석이다. 그 해석이 맞다면, 히딩크 감독은 'in the olympic team'이란 예를 들지 않았을 것이다. '올림픽팀'은 문제의 보도에서 의역한 '(성인)대표팀'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딩크의 'on a national level'은 청소년대표팀을 포함해 올림픽팀에서든 대표팀에서든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봐야 마땅하다.

또 히딩크가 '지지했다'랄지 '권고했다'는 기사 용어도 무리다. 네덜란드에 있는 히딩크가 국내의 민감한 논쟁에 뛰어들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백 번 양보해 히딩크 감독이 보도 내용처럼 "박주영을 대표팀에 합류시켜야 한다"는 의도였다 쳐도, 박주영의 구체적인 기량을 잘 모르는 히딩크로선 그저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이다. 어쩌면 박주영의 플레이를 지켜본 일반 축구팬보다 못한 권위의 평가라는 얘기다. 때문에 '지지'하거나 '권고'하고 자실 것도 없는 것이다.

요컨대 히딩크 감독은 박주영을 청소년대표팀에서 성인대표팀으로 승격 발탁하라고 권고한 게 아니라, 젊은 유망주들을 청소년대표팀이든 올림픽팀에서든 국가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아울러 히딩크에게, 박주영의 성인대표팀 발탁이란 문제는 지금 한국에서처럼 민감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것이다.

박주영이 초미의 관심사다 보니, 방송 보도와 신문 기사에서 무리한 스포츠 기사가 나온다. 이른바 '박주영 야마' 때문에 '사실'이 착종되거나 실종되고 종종 무시된다. ‘히딩크, 박주영 발탁지지’ 해프닝은 이런 스포츠 저널리즘 관행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라고 해서 그런 관행에서 결코 자유롭진 않다. 하지만 이젠 좀 원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의미도 재미도 어디까지나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추구해야 한다. 새삼 나부터 반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