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경질에 반대한다.

한동수 기자 dshan@mbc.co.kr

축구협회는 사실상 본프레레 감독을 경질시키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다.
이미 차기 감독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날이 바뀌고 다시 “아직 결정된 것은 없고, 23일 열리는 기술위원회에서 감독의 거취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언론은 칼을 거둘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원죄가 있다. 지금처럼 단기적인 시각으로 히딩크를 제거하려고 악을 쓴 적이 있지 않은가? 굳이 당시 신문 방송 기사를 다시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경질론의 주요 근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1. 전술에 색깔이 없다....

히딩크 감독도 월드컵 5개월 전까지 이런 소리를 들었다.
본프레레의 경우도 완성되지 않은 것이지 색깔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대부분 네덜란드 출신 지도자들은 극단적으로 공격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본프레레 감독의 축구 역시 다분히 공격적인 색깔을 띠고 있다.
(물론 완성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히딩크의 3백이 측면 미드필더의 수비 가담을 강조하는 반면 본프레레 감독은 미드필더들을 공격적으로 배치시키는 편이다. 3톱만 고집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필자가 지켜본 바로는 최근 들어 플레이 메이커를 둔 역삼각형의 투톱을 종종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골이 터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한국 축구가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난제지 본프레레 체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2. 월드컵이 문제가 아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용수 교수처럼 고차원적인 논리로 감독 경질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월드컵만 축구가 아니다’ ‘향후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월드컵에서 실패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체제로 가자는 내용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월드컵에서 실패한 감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때가서 또 바꿔야하나? 결국 독일 월드컵 준비를 빼놓고 감독 경질을 논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3. 선수 기용에 원칙이 없다.

일리가 있다. 관심있게 축구를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나 본프레레의 카드에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외국인 감독이 거쳐야 할 시행착오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히딩크 감독도 송종국을 플레이 메이커로 쓰기도 했고, 박지성을 미드필드 꼭지점에 세워보기도 했다. 초창기엔 박지성과 이영표를 더블 볼란치로 기용하기도 했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그 시행착오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본프레레 감독은 정경호를 중앙에 배치하고 이천수를 윙백으로 내려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본프레레 감독의 말처럼 “이런 실수를 미리 해서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교훈을 얻었다”면 그것 또한 소득이 아닐까?

4. 말을 바꾼다..

정말 어이없고 감정적인 논리다. 우선 말을 바꾸는 것과 지도력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또, “”를 쓰면 세상 누구나 사기꾼으로 만들 수 있다.
일부 신문에선 ‘본프레레 감독이 동아시아 대회에 앞서 “3전 전승으로 우승하겠다”고 공언해놓고 성적이 안 좋으니까 “이번 대회의 목적은 젊은피의 실험이었다”라고 변명했다’며 인신 공격에 가까운 비판을 늘어놨다. 그러면 “최선을 다해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모든 축구 선수들이 다 거짓말쟁이인가?

물론 지금 본프레레호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가 본프레레에게 준 시간은 이제 겨우 1년이다. 긴 시간 같지만, 실제 훈련 시간은 한 달이 안 된다. 그것도 해외파가 모두 합류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감독 경질을 주장하는 국내 지도자들에게도 묻고 싶다. 그대들은 매일 훈련시킬 수 있는 프로팀을 맡아 1년 만에 괘도에 올려놓을 자신이 있는가?

그래 좋다. 감독을 바꾼다고 치자. 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1. 시간이 없다.

본프레레 감독 선임까지 2달이 걸렸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도 최소한 한달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 월드컵까지 10개월도 남지 않았다. 히딩크도 1년 6개월이 걸렸다. 그때는 해외파도 없으니 차출 문제도 어렵지 않았고 오랜 기간 합숙도 할 수 있었다.
다시 시작하는 감독이 아무리 유능한들 그걸 해낼 수 있을까?

2. 누가 올 것인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조선일보가 지적했듯이 이론적으로 후보군은 3갈래다.
해외파 감독, 국내파 감독, 국내의 외국인 감독이다.
그러나 해외파의 경우 후보 리스트 작성도 쉽지 않다.
한때 물망에 올랐던 매카시 전 아일랜드 감독은 선더랜드를 맡고 있다. 룩셈부르고 전 브라질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고, 스콜라리 전 브라질 감독은 굳건하게 포르투갈을 지키고 있다.
‘프리’ 상태의 명망있는 지도자는 많지 않다. 게다가 유럽 리그가 시작해 선택의 여지는 더욱 좁다. 히딩크 정도의 명망을 갖추고, 영어를 구사하는 지도자인 동시에 계약 문제에서도 자유로운 사람이라면.......보비 롭슨 전 뉴캐슬 감독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는 박지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김태영을 영입하려고 했던 지한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뉴캐슬에서 중도하차한 이 노장 33년생으로 벌써 만 72세의 고령이다.

국내파 감독들의 경우 학연과 지연으로 나뉘어 있는 국내 축구계에서 수많은 구설수에 휘말릴 것이다.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국내의 외국인 감독 이안 포터필드 부산 감독과 파리아스 포항 감독의 경우 현실성이 떨어진다. 축구협회도 이 2가지는 차선책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느 경우든 누가 2년 사이 2명의 목이 날아간 한국 축구 사령탑을 선뜻 맡을 지 의문이다. 본프레레가 한국 감독이 취임했을 때에도 외신들은 한국 축구 감독을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했다. 본프레레까지 경질된다면 한국 축구는 ‘감독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두서없이 적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에겐 시간도 없지만, 이렇게 바꾸는 것도 어렵다. 개인적으로 경질 주장은 일종의 “리셋 증후군”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는 언제든지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다시 켜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다시 켜질 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일단 컴퓨터 리셋 버튼을 누르려고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