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말아톤' 진호의 금메달.

김경호 기자 hokk77@empal.com

9월 7일 새벽 두 시. 곤히 잠을 자고 있던 저는 핸드폰 벨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수화기에서는 해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는 교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전화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끊어져버렸고, 저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6시 반쯤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번에는 031로 시작되는 지역번호가 찍혀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누구인가 하고 전화기를 들으니 진호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세계 대회에 나갔던 진호가 배영 100m에서 동메달을 땄다는 것이었습니다.

진호가 체코로 떠나기 하루 전 진호 어머니와 통화를 했었습니다. 건강히 잘 다녀오시라는 말과 함께 좋은 결과 있으면 꼭 연락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그 약속을 지키신 거였죠. 진호가 과연 세계 대회에 나가서도 잘할 수 있을까하며 반신반의하던 저로서는 실제로 메달을 따낸 진호에게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틀 뒤, 아침에 또다시 진호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번에는 배영 200m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대회 유일의 세계 신기록으로요. 야...진호가 정말 해냈구나. 대단하다 대단해.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진호의 이야기가 언론을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그동안 진호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던 언론들도 금메달 소식에 흥분했습니다.

덩달아 다른 방송사에서도 저희 스포츠 취재부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진호의 이야기를 뉴스에 내보내고 싶은데 진호의 경기 화면이 없으니 화면을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진호가 전국대회에 출전했을 때 취재한 곳이 저희밖에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만 갖고 있는 화면을 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이겨내고 성공을 거둔 진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더 많은 언론을 통해 전해주는 것이 진호와 모든 장애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선배들의 뜻에 따라 다른 방송사에도 화면이 제공되었습니다.

그 날 밤, 모든 방송사에서 진호의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한 방송사에서는 메인 뉴스에서 톱뉴스로 진호 이야기를 내보냈습니다. 참 감동적인 일었습니다. 그동안 눈물을 흘리며 희생하신 진호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진호. 물론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폐를 이겨내고 세계 장애인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이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장한 인물이 진호뿐이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진호에 앞서 세계 장애인 선수권 뿐만 아니라 장애인 올림픽에서도 당당히 금메달을 따낸 훌륭하고도 장한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난 해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11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6개를 땄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주인공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진호와 그 분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가장 결정적인 것은 진호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이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진호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귀엽고 잘생긴 외모를 가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겠죠. TV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훌륭한 외모를 갖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장애인 선수권대회가 아니라, 장애인 올림픽에서 아무리 금메달을 따도 전혀 관심을 끌지 못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진호의 성공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진호만큼 훌륭한 다른 분들도 있는데, 진호에게만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얄팍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기자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지금도 수많은 자폐아들이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휠체어 장애인들이 농구공을 튕기고, 탁구 라켓을 쥐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한 번 더 관심을 갖자고 다짐봅니다. 하지만 글쎄요...그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올 수 있을지는...저도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