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워서 기자질 못 해 먹겠네(?)

정규묵 기자 mook@mbc.co.kr

10월 26일

일본 시리즈 4차전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 야구의 성지로 불리는 오사카로 떠났다. 한신이 왼손 투수를 선발로 내세워 선발 출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승엽은 1,2차전에서 벌써 홈런을 두 개나 쳤다.

그리고 벌써 3연승. 우승까지 1승밖에 남지 않은데다 매 경기 10점씩을 뽑고 있는 롯데의 상승세로 볼 때 우승은 이미 떼논 당상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꼼꼼하다던 야구를 정복한 이승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한국 야구에 있어 꽤 가치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출장은 너무 급조됐다. 경기전 그라운드에서 이승엽을 만나는 건 차지하고라도 당장 ID(취재 카드라고 보면 된다) 받는 것도 경기시작 20분전에야 이뤄졌다. 그리고 취재 신청이 너무 늦어 가지고 간 ENG카메라로 경기를 찍을 수 없는 상황.
게다가 기자석은 커녕 경기장에서 서서 경기를 볼 수도 없었다. 뭘 보고 어떻게 기사를 쓰란 말인가. 결국 경기장이 아닌 별관 건물에 가서 우린 쪼그만 TV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우리고 온 것을 안 것일까. 아니면 일본 야구의 성지에서 우승의 종지부를 직접 찍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이승엽은 첫 타석 투런 홈런에 이어, 좌중간 2루타로 석 점을 벌었고, 6회에는 2루타를 치고 3루까지 달리다 아쉽게 아웃됐다. 9회 마지막 타석에서도 우익수 앞 안타.

6회 3루에서 세이프만 됐더라도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는 건데, 이 보수적인 일본 야구에서 그것도 일본 시리즈 4차전에서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이 사이클링 히트를 했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 속에 이제는 경기가 끝난 후 이승엽 인터뷰가 문제였다. 중계권이 없어서 그라운드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일본 야구협회의 답변.

앞뒤 전후사정 무시하는(?) 기자 근성을 다시 한 번 발휘해야 하는 것인가.
급기야 롯데 우승과 이승엽의 세리머니 장면을 찍기 위해 우리는 3루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로 기습적으로 침입했다. 그리고 이승엽을 찍었다. 야호. 인터뷰도 두 마디 했다. 방송용으로,
하지만 우리는 금방 제지를 받았다. 현지 일본 언론들이 3루 파울 지역에서 다 쭈그리고 순서를 기다린 반면 우리는 막무가내로 카메라를 돌렸다.
그리고 황급히 경기장을 떠났다. 기사와 그림을 위성으로 송출해야하기 때문에

*10월 27일

어찌어찌 위성은 잘 막았지만, 인터뷰는 이승엽의 말 두 마디 뿐.
보충 취재가 필요했다. 일본 언론으로부터 바비 매직으로 추앙받고 있는 발렌타인 감독 인터뷰도 필요했고, 팀 동료나 현지 기자의 멘트로 필요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이승엽의 말이었다.

물론 우승도 했거니와 이승엽 본인이 원래 기자들에겐 호의적인 선수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승엽을 인터뷰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사전 약속없이 현장에서 닥치는대로 모든 인터뷰를 해결하려 했던 우리의 의지는 롯데 홍보담당자에게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고, 우린 결국 호텔과 신칸센(일본고속열차) 역으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몇 사람을 인터뷰 해야만 했다.

추후에 들은 말이지만 롯데 구단의 홍보 담당자들은 풀 취재단을 구성한 우리 방송 3사들에게 "왜 사전 약속 없이 와서 질서를 어지럽히냐는 식으로 말했다한다".

물론 일본의 취재 관행에 비춰보면 우리의 취재 방식엔 무리가 있었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한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우린, 난 아직 한국사람이고 한국적인 방식에 익숙해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인정을 호소했지만, 인정과 사정은 한국에서 통하는 방식이었다.

요즘 해외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많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취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어떤 선배는 농담으로 "일본에서는 기자질을 못해먹는다"라고 얘기한다.

그럼 아직까지 대한민국이 기자질하기 편한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