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롯데 떠나나...

정규묵 기자 mook@mbc.co.kr

일본시리즈 우승 후 롯데는 고베 숙소 호텔에서 어마어마한 맥주 파티를 벌였다.

그리고 이승엽은 일본시리즈 MVP를 놓치고 우수선수상을 탄 아쉬움을 달랬다. (물론 우수선수상을 탄 것도 한국인으로서 굉장히 큰 영광이다. ) 동료들의 장난도 이승엽에게 집중돼, 수영모자와 물안경까지 끼고 나온 이승엽은 동료들에게 맥주세례를 수 차례 받았다.

이튿 날, 우린 이승엽을 인터뷰하기 위해 호텔을 찾았고, 이승엽은 흔쾌히 취재진에게 인터뷰 시간을 내줬다.

우승의 기쁨을 2천2년 삼성에서 우승했을 때와 비교해 달라고 하자,

이승엽은 일본 무대를 정복한 기쁨이 삼성 우승 당시의 기쁨 만큼은 되지 못한다고 했다. 계속 몸을 부대끼고 땀과 눈물을 함께 흘려오지 않아서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향후 진로에 대해 묻자 다소 뜻밖의 말을 했다.

"다시는 지명타자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명타자제도가 없는 퍼시픽리그를 떠나 센트럴리그로 이적하겠다는 말로도 들릴 수 있고, 플래툰 시스템을 적용해 좌투수가 나오면 선발에서 제외시키는 발렌타인 감독에게 무언의 항의를 하는 듯한 발언으로도 들을 수 있는 묘한 표현이었다.
덧붙여 롯데에서 2년간 50억원을 제시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얘기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정식 제안은 없었다면서 한 발 물러섰다.

지난 4월 이승엽 선수를 취재하기 위해 지바를 방문했을 때도 이승엽은 지명타자가 싫다고 했다. 몸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승엽은 지명타자를 하면, 남들 수비할 때 혼자 덕아웃을 지켜야 하고, 전타석에서 치지 못하면 왜 치지 못했을까 덕아웃에 혼자 남아 고민을 해야하기 때문에 지명타자는 싫다는 것이다.

덧붙여 수비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올 시즌 후 FA가 되기 때문에 야구 인생에 있어 나에게 도움이 되는 팀을 선택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발렌타인의 지도력에 대해서 물었을 땐, 이승엽은 플래툰시스템에 대한 약간의 불만을 드러내면서 우승까지 했으니까 분명 뭔가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올 해는 팀에 불미스런 일이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발렌타인의 친화력은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승엽은 지난 4월에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며 발렌타인의 선수 기용 방식에 의심을 품고 있는 듯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

하긴 팀내 홈런 1위, 타점 1위의 선수를 좌투수에 조금 약하다고 해서 선발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선 일본 기자들도 이승엽이 좌투수에 약한 문제점은 안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발렌타인의 용병술을 감싸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이승엽에게 일본어를 좀 더 배우려는 노력을 한다면 일본 무대에 적응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의 말까지 던졌다.

야구에 있어서 한국보다 한 수, 두 수 위라고 생각하는 일본 언론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아직 이승엽이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운 선수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아시아시리즈에서 맞붙을 삼성이 어떤 팀인지도 모른다. 단지 선동렬 감독이 팀을 맡고 있다는 사실만 안다.
우리가 아시아시리즈 얘기하며 한일전 대결 구도로 모는 것과는 상당한 관심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승엽은 그 보수적인 일본 야구의 콧대를 꺽어놓은 것은 사실이다. 분명 향후 팀 선택에 있어 확실하게 칼자루를 잡은 셈이다.
현재로선 발렌타인 감독의 거취와 이승엽의 거취가 어긋날 수도 있다. 일본 언론에서 바비 매직이라고 불리는 발렌타인 감독의 희한한 용병술이 계속되는 한, 이승엽이 더 이상 롯데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

실력은 퍼시픽리그가 한 수 위라도 아직은 일본 야구의 중심은 센트럴리그다. 일본 기자들에게 물어봤더니 유명한 선수들은 거의 센트럴리그에 있다고 했다. 인기의 중심. 일본 야구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같은 연봉이면 이승엽이 1루가 보장만 된다면 후회없이 센트럴리그로 갈 수도 있다.

미국 언론과 일부 일본 언론에서 발렌타인 감독과 이승엽이 같이 미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저번엔 탬파베이더니 오늘은 LA다저스행이 유력하다고 나왔지만 이건 발렌타인 얘기지 이승엽 얘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승엽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확실한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자기가 먼저 나서 메이저리그에 가겠다고 설치지는 않겠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이승엽은 당분간 아시아시리즈에 전념한 뒤 차분차분하게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이승엽은 2003년 겨울,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하자 갑작스럽게 일본행을 택했다. 그리고 친정팀 삼성을 등진데 대해 기자회견장에서 복받치는 울음을 터뜨리며 반드시 일본에서 성공한 뒤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이승엽은 일단 남벌(南伐0에 성공했다.
과연 이승엽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칼자루는 이승엽이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