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례 평가전이 남긴 것.

한동수 기자 dshan@mbc.co.kr

스웨덴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유럽 강호들과의 평가전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결과와 내용 모두 고무적이었고, 감독 잘 뽑았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하지만, 아드보카트에 대한 평가는 일단 유보하기로 한다. 다만 대표팀의 올해 일정이 마감된 만큼 대표팀과 아드보카트에 대한 인상을 정리하는 정도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아드보카트는 지장(?) 운장(?)

지금까지 2경기를 지켜보면서 아드보카트 감독이 참으로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골에 관한 것이다. 이란전에선 조원희가 1분만에, 스웨덴전에선 안정환이 7분만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전에선 최진철이 4분만에 각각 선제골을 터뜨렸다. 본프레레 감독 시절엔 그렇게 터지지 않던 골들이 모두 10분안에 그것도 선제골로 쏟아졌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안정환 이동국 같은 골잡이들의 골이 터졌다는 것이다.

다음은 예상치 못했던 신데렐라들의 등장이다. 이호와 조원희는 데뷔전부터 주전급의 활약을 펼쳤다. 늘 고민스럽던 김남일과 송종국의 공백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이 두 선수의 발굴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또 '이제는 한번쯤 불러 볼만 했던' 이을용도 자신의 활용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무리 지-덕-용을 갖춘 장수도 운장을 당할 수는 없는 법.
스타일상 지장에 가까운 아드보카트에게 출발부터 운이 따르는 것 같다.

* 월드컵 엔트리 윤곽이 보인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을용의 컴백은 효과적이었다. 김정우도 홀딩에 최대한 신경을 쓰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거듭나는 모습을 보였다. 기존의 이호 김정우 이을용에 김남일이 복귀하면 중앙 미드필드 라인 구상은 사실상 끝난다.

넘쳐 나던 측면 공격수들도 대충 교통 정리가 되는 모습이다.
강신우 기술국장에 따르면 군웅할거하고 있는 윙 포워드들은 "스타일에 따라 기용될" 것이라고 한다. 설기현 박지성 박주영이 안으로 좁혀 들어오는 스타일이라면 차두리 정경호 이천수는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스타일이라는 얘기다.

최전방 공격수는 이동국 안정환 이외의 대안이 사실상 없는 형편이다.
이영표와 조원희를 백업할 측면 미드필더 요원만 부각된다면 월드컵 엔트리의 퍼즐은 대략적으로 완성된다.

문제는 수비 라인의 밑그림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드보카트는 2경기 모두 최진철-김영철-김동진 라인을 가동했다. 대과(大過)는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완성된 라인은 분명 아니다. 아직도 조용형 김한윤 김진규 그리고 조병국 조성환 등 테스트해야 할 자원들이 많다. 어차피 해외파도 없는 포지션이니 실험의 기회도 많고 또 그만큼 경쟁도 치열한 자리가 될 것 같다.

* 박지성 상종가 박주영 보합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와는 다르게 박지성은 공격수로서 더 빛나는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아드보카트는 오히려 ‘전체적인 공격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박지성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현 대표팀의 공격 자원도 풍부한 편이기 때문에 박지성은 이선으로 돌리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스웨덴전 그리고 2001년 12월 서귀포에서 열린 미국전을 생각하면 썩 매력적인 카드는 아닌 것 같다. 2001년 당시 히딩크는 박지성을 쓰리톱 아래를 받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하고 다이아먼드 형태의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고, 이후부터 박지성의 포지션은 측면에 고정됐다.

측면 미드필더로 뛰는 건 몰라도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라면 아무리 박지성이라도 얘기는 달라진다. 사실 중앙 포지션에 선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축구 강국일수록 중앙 포지션에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박지성이 뛰어난 멀티 플레이어이고 한국 축구의 대표주자이긴 하나 그 역시 중앙에서 뛰는 건 상당히 어렵다고 털어놓곤 한다. 평소와는 달리 앞을 보지 못하고 수비를 등지고 패스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또, 박지성의 경우 창조적으로 공간을 파고드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창조적으로 패스를 하는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훈련할 수 있는 기회는 내년 월드컵이 임박해서나 가능한 일이고 또, 소속팀 맨체스터에서도 측면 미드필더나 공격수로 나서는 만큼 개인적인 적응 기회도 없다.
만약 공격형 미드필더가 꼭 필요하다면 박지성보다는 박주영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천재라던 박주영도 대표팀에 승선한 뒤 세계 축구의 벽에는 고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문제는 박주영의 포지션에 있다고 본다. 박주영은 대표팀에서 줄곧 측면 공격수로 나섰지만, 윙 포워드로 뛰기엔 절대 스피드에서 박주영은 다소 열세에 있다. 자신의 특기인 순간 스피드도 세계적인 축구 강국의 템포엔 번번이 막혔다. 하지만 청구고 시절부터 축구계를 술렁이게 만든 천재 박주영은 윙 포워드가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처진 스트라이커였다.

축구팬들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박주영의 재능은 육체적인 면보다 감각적인 면에 더 의존하고 있다. 적절한 볼 배급과 완급 조절, 그리고 슈팅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과 높은 득점력까지.... 박주영은 박지성처럼 90분 내내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못해도 필요한 순간 번뜩이는 선수다.

때문에 박주영의 능력을 극대화한다는 차원에서는 AC 밀란과 같은 포메이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투톱과 공격형 미드필더가 역삼각형 형태의 공격진을 구축하고 강력한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그 뒤를 받치는 형태다. 아드보카트는 쓰리톱 전술을 사용하지만, 구사할 수 있는 포메이션은 많을수록 좋다. 또 현 대표팀 선수 구성상 써 볼 만한 카드라고 생각된다. 이란전에서 3백과 4백을 오가는 유연성을 보였던 만큼, 굳이 박주영-박지성 때문이 아니더라도 향후 아드보카트 감독이 보여줄 탄력적인 전술 운용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