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를 말한다.① 굴욕적인 개막.

전훈칠 기자 thateye7@imbc.com

[WBC가 남긴 것...]

코흘리개 시절부터 '밴텀급', '플라이급' 등과 어울리는 단어로만 알았던 WBC가 2006년 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라는 거창한 야구 대회의 타이틀로 재탄생했다.

이미 세계의 가장 대중적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축구까지 들지 않더라도, 미국 내에서조차 풋볼에 밀리면서 이른바 'American Pastime' 의 명예에 상처를 입은 상태. MLB는 그간 틈틈이 외쳐온 '야구의 세계화'라는 대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판을 벌였다.

[굴욕적인 개막]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레 무대를 마련하면서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사태가 이어졌다.

정규리그를 앞둔 시점이라, 구단과 선수들이 혹시 모를 부상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보험사와의 계약조차 그 성사가 쉽지 않았다. 특히 어깨의 수명이 곧 선수 생명과 다름 없는 투수들에겐 더 치명적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야구를 모욕하는 것으로까지 여겨지는 투구수 제한 규정이 포함됐다.

명색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라 억지로 남아공까지 끼워 넣으면서 오대양 육대주의 화목스런 참가를 도모하긴 했지만, 어쨌건 주 참가국이 미주대륙(America)과 아시아(Asia)라는 점을 생각하면 WBC 아닌 ABC 라 해야 마땅할 참이었다.

그나마도 마이크 피아자(샌디에이고)에게 이탈리아 유니폼을 입히는 등 고육지책을 동원했고, 심지어 대니 하렌(오클랜드)에게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네덜란드 팀에서 뛰라는 황당무계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하렌은 결국 불참했다.)

거물급 스타의 불참 소식도 하나 둘 늘어갔다.
'나도 스타라면 스탄데 저런 어거지 대회에는 참석하면 안되지' 라는 그들만의 여론도 한 몫 했다. 한 명이 불참을 선언하면 자존심 센 다른 스타들도 도미노처럼 참가 의지를 접었고, 결국 시작도 해보기 전에 상당 부분 맥이 빠져버렸다. (몇몇 우리나라 선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두고 두고 이야깃거리를 만든 조편성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선수들이 정상 컨디션을 갖추지 못하면서 (몇몇은 '않으면서') 제대로 된 경기를 치를 수가 없다는 현실이었다.

선수들의 의욕도 없고, 질적으로도 기대할 것 없는, 그래서 우려와 걱정만 잔뜩 머금고 열린 WBC.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썩 좋지가 않았다.

아시아 예선이 끝난 뒤 사실상 WBC의 개막전으로 벌어진 경기, 그것도 메이저리그 팬들이라면 누구나 손꼽아 기다렸을 법한 도미니카 공화국과 베네수엘라의 맞대결. (대회 개막 전, WBC가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거의 유일한 근거가 된 시합이다.)

그렇지 않아도 슬로우 스타터로 알려진 '좌완 외계인' 요한 산타나는 최고 구속이 간신히 90마일 안팎을 오가는 사태가 벌어졌고, 푸홀스, 오티스, 벨트레, 콜론, 어브레이유 등 선수들의 휘황찬란한 명성과는 달리 경기 내용 자체의 긴장감도 한참이나 떨어져 새벽잠을 설친 이들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1라운드 예선은 상위 두 팀과 하위 두 팀이 명백한 격차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경기에 대한 재미는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