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를 말한다.③ 그들에 대한 재평가

전훈칠 기자 thateye7@imbc.com

대부분이 MLB에 가담하고 있는 도미니카와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 등의 선수들에겐 별반 관계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KBO 소속이 대다수인 우리나라 선수들에겐 팬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재평가 받는 색다른 기회를 가진 셈이 됐다. 대회가 모두 끝난 뒤, 되돌아보는 입장에서 우리 선수들의 기량이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분명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동안 같은 포지션이면서도 소속된 리그가 달라 자주 비교의 대상이 됐던 최희섭과 이승엽에 대한 논쟁도 이번 대회를 통해 종지부를 찍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WBC의 성적을 토대로 자국 리그 간의 수준을 비교 한다는 것 자체가 경솔한 짓이겠지만, 한국 팀의 선전으로 인해 한국 야구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적어도, 한국 야구가 “다만 AA에 지나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괜찮은 선수가 몇몇 존재하는, 한 번 쯤 주목할 만한 리그” 로 격상된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WBC 4강을 2002 월드컵 4강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우리나라는 2002년고 마찬가지로 자신감이라는 큰 성과를 얻었다.

대부분의 선수가 귀국 인터뷰를 통해 '이제는 다시 붙어도 동등한 입장' 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선수들의 자신감이 크게 높아졌다. 일본을 꺾은 것은 정신력의 승리로 이해하는 게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미국을 물리친 것은 확실히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특히 미국은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데릭 지터 등 최정상급 스타들이 포진해 있었다는 점이 더욱 극적이었다. 나머지 선수들도 대부분이 올스타에 뽑힌 경험이 있거나 미국 대표로 뽑히기에 큰 흠결이 없는 선수들이다. 리치 하든이나 에릭 가니에게 빠진 캐나다라면 모르겠지만, 미국이 최정예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승산이 높았다고 폄하할 근거가 없었다는 얘기다. (굳이 여기서 단판 승부였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WBC, 긴 역사의 시작인가 일회성 이벤트인가]

결과만 놓고 봤을 때, WBC는 ‘첫 대회 치고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아시아와 중남미 지역의 호응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베네수엘라의 카를로스 기옌은 “우리나라를 침공하려거든 경기 있는 날 쳐들어 와라. 대통령도 신경 끄고 야구 본다.” 며 자국의 열기를 떠벌렸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과 맞물려 관중 동원 측면에서도 대회 중반부터 버드 셀릭 MLB 커미셔너가 대놓고 대회 성과에 대해 흡족해 할만 했다. 물론 미국의 4강행이 좌절되면서 셀릭도 더 이상 공개 석상에서 발언을 자제하긴 했지만.

급속히 달아올랐던 WBC의 열기가 사그러들고 있는 요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과연 WBC가 앞으로도 계속 정례적으로 개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어부지리로 살아남아 우승까지 차지한 일본이 충천한 사기를 바탕으로 2회 대회를 개최한다지만, 역시 관건은 미국의 의지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파이를 키우기 위해 만든 대회인 만큼, 그 파이의 손익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게 또 미국이다.

ESPN 등 현지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WBC를 개최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지만 그 시기가 3월이라는 것은 아직까지 큰 걸림돌”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즌이 끝난 11월 말 쯤, 플로리다의 따뜻한 곳에서 치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지만, 개최지가 미국이 아니라면 WBC가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단적으로 2회 대회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면 네덜란드와 파나마의 예선 경기를 보러 갈 사람이 있을까? 일본과 쿠바의 결승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결국 MLB가 의도하는 세계적인 대회로 성장할 가능성이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결국 야구는 세계화할 수 없는 상품이라는 결론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꼭 모든 종목이 세계화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