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PD만 아는 이야기
(공개방송편)
글 | 조정선 MBC-FM 4U PD
1980년대 MBC-FM에서 한창 인기가 있었던 ‘밤의 디스크 쇼’는 매주 일요일이 공개방송으로 진행이 되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히트시키기 전, 무명의 ‘이문세’가 나와서 ‘나는 행복한 사람을’ 부르고 나면, 진행자 ‘이종환’씨는 “얼굴이 위 아래로 잘려서 TV 출연도 못하는 주제에…” 하면서 약을 잔뜩 올리고, “두 번째 노래로 뭘 부를 거냐?” 묻고는 상대방이 대답도 하기 전에 “물으나 마나 ‘삐리삐리 파랑새’겠지. 다른 레퍼토리가 있을 턱이 있나” 하면서 끝까지 심술로 일관했다. 물론 ‘이문세’의 맞대응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말이다. ‘FM 스페셜’로 명명된 그 프로그램의 초대 PD로서, 월요일마다 각급 학교에서 텔레비전 ‘일요 명화극장’보다, ‘디스크 쇼’ 공개방송이 휴식 시간의 단골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는 소식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이지기도 했다. 2시간 프로그램을 둘로 쪼개 1시간용 마그네틱 ‘릴 테이프’에 담던 시절이었는데, 잠시 정신이 나갔는지, 1부가 끝나 테이프를 교체해야 할 때, 새 것이 아닌 애써 녹음한 테이프를 다시 걸었던 것이다. 오마 갓! 순간 Stop 버튼을 눌렀지만, 이미 지워진 부분이 15분 가량. 방청객에 거듭 사과를 하고, MC의 오프닝은 다시 만들었지만, 이미 노래와 토크를 실컷 늘어놓다가 빠이빠이하며 떠난 가수의 소리는 어디서 주워담는단 말인가?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애꿎게도 첫 번째 나왔던 가수는, 인사도 없이 느닷없이 나와서 몇 마디 하지도 않고, 노래도 한 곡만 부르고 퉁명스럽게 사라져 버린,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가수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담긴 부분은 PD의 실수로 고스란히 지워졌던 것이다.
그런 지 얼마 후 담당이 C모 PD로 바뀌었고, 공개방송의 낭패는 이어졌다. 그날따라 사회자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방청객의 박수와 더불어 이어지는 오프닝이 삐걱거리자, ‘이종환’씨는 스스로 진행을 끊고 PD가 있는 녹음 부스를 향해 이렇게 말을 했다. “C형! 오늘 좀 안 좋은데, 다시 가지” 그러면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테이프 사인부터 가겠습니다. 수고하십니다. 이 테이프는 00일 00시에 나갈 디스크 쇼 FM 스페셜 공개방송입니다” (여기서 테이프 사인이란 라디오의 녹음 방송에서, 테이프가 잘못 걸리지 않도록 송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에게 날짜와 시간을 확인시켜주는 아나운스 멘트로 청취자들이 듣지 못하는 부분). 그런데 귀신이 잠시 씌었는지, 녹음 분을 편집하던 PD는 NG가 났었다는 사실을 잊고 처음부터 그대로 방송에 내버리고 말았으니, 청취자들은 사회자의 오프닝을 두 번 들었고, 라디오 주조정실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처럼 프로그램의 날짜와 시간을 다시 확인했으며, 사회자가 개인적으로 PD를 ‘C형!’이라고 부른다는 사실까지 보너스로 알게 되었다.
공개방송에 관한 에피소드가 어디 이뿐이랴! 지금은 타계한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20년 전의 일이다. 그는 MBC-AM에서 ‘세월 따라 노래 따라’를 진행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가끔 중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공개방송을 갖곤 했다. 그 날도 성황리에 공개를 끝내고 부산의 행사장에 도착한 ‘이주일’씨는, 갑자기 담당 PD에게 전화를 받고 기절할 뻔했다고 한다. “뭐? K모 AD가 실수를 해서 녹음된 테이프가 전부 지워졌다고? 당장 올라오지 않으면 방송이 펑크라고?” 무대에 한 번만 서도 수 천만 원을 벌었던 그는 서둘러 비행기를 타고 다시 정동에 있는 공개홀로 왔는데, 이번에는 방청객이 없어 썰렁한 채로 2시간을 때웠다고 한다. 하지만 너털웃음으로 대인의 풍모를 끝내 보여주었다는 얘기다.
예전에 사용하던 방송용 마그네틱 테이프는 자주 끊기거나 꼬여서 편집하는 PD를 당황하게 하곤 한다. 공개방송을 편집하던 L모 PD가 주의를 소홀히 해서, 테이프가 대책 없게 엉킨 어머니의 털실묶음이 되고 말았던 적이 있다. 길이로는 수백 미터를 아니 천 미터는 족히 되었을 그 테이프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L모 PD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 ‘어머니가 예전에 엉킨 털실을 패에 가지런히 모을 때 어떻게 하셨지?’ 하고 그는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는 방송사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100 미터쯤 되는 복도에 꼬인 테이프들이 금방이라도 줄다리기 시합이 열릴 듯한 모습으로 길게 늘여져 있는 것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선배 PD마다 모두 혀를 끌끌 차며 한 마디씩 했지만, 그는 몇 시간의 사투 끝에 공개 테이프 복구에 성공한다.
PD로 처음 입사해서는 공개방송의 허드렛일에 누구나 투입된다. 비품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르며, 관객을 정리하거나 박수 유도를 하는 것이다. 수습 PD 시절 ‘강변 가요제’에 투입된 S모 PD는 단순 육체노동(요즘 말로 ‘노가다’)을 명 받았다. 3일간의 공개행사(80년대 만해도, 본선과 결선이 3일 이어졌다)에 왜 그리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지, 게다가 꾀죄죄한 그의 모습을 보고 한 마디씩 더 거든다. “너 방송국 취직했다더니, 겨우 이런 일 하니? ” 남자 친구와 구경 온 여자 동창생 앞에서는 숫제 얼굴을 들지 못한다. 30도가 넘는 땡볕에서 관객 누구나 성질 반 호기심 반으로 노래를 듣는데, 환호가 나올 턱이 없고, 선배에게 받은 윽박지름으로, 노래 사이사이에 무대 앞에서 손을 치켜들고 박수를 유도 하지만, 호응하는 사람이 없다. 이윽고 눈을 치켜 뜬 선배가 그에게 다가와 귀엣말로 말한다. “야 이 자식아! 그리 하려면 집어 쳐!” 하지만 그 때 집어 치웠으면, 윗자리에 앉아 편히 옛날을 회상 못했을 그다.
라디오 PD의 에피소드 천국, 다음 달로 이어가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