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에서 불량배보다 더 불량스러운 형사로 변신했던 김래원(26)이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평소 꿈꿔왔던 감독의 꿈을 이뤘다고. 올해로 데뷔 10년째를 맞는 배우 김래원을 만났다.
“머릿속에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그려지던데요”
지난해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불량배보다 더 불량스러운 형사로 변신했던 김래원(26)이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김래원이 오랜만에 안방 팬들을 만나기 위해 선택한 작품은 MBC-TV 드라마 ‘넌 어느 별에서 왔니’다. 이 작품은 KBS-TV 드라마 ‘풀하우스’ ‘고독’ ‘푸른 안개’ 등을 연출했던 표민수 감독의 MBC 데뷔작이라는 것에서 더욱 주목을 끈다.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왔지만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TV를 떠나 영화 작업을 하는 동안 현장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어요. 그런 것들이 이번 작품에 녹아들었으면 좋겠네요.”
김래원은 이번 작품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좌절과 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영화감독 최승빈 역을 맡았다.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 감독과 스테프들로부터 극중 캐릭터와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극중 캐릭터와 닮지 않은 듯하다.
“솔직히 저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극중 승희가 훨씬 멋있어요. 승희는 터프하진 않지만 마음속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죠. 개인적인 바람은 이 드라마가 끝날 때쯤엔 승희와 닮았으면 하는 거예요.”
김래원은 소년처럼 맑은 미소 때문에 스마트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만능 스포츠맨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는 이틀 동안 50명과 싸우는 장면을 찍으면서도 대역 없이 액션 연기를 소화했다. 이렇듯 전작에서 외적으로 강인한 형사를 연기한 김래원은 이번 작품에서 내면이 강한 진짜 남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무슨 역할을 맡든 온전히 자신만의 개성으로 캐릭터를 소화하는 게 배우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머릿속에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그려졌어요. 최승희를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같은 남자로 그리려구요.”
정려원은 내가 아는 가장 ‘촌스러운 여자’
‘넌 어느 별에서 왔니’는 주인공 최승희(김래원)가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결심으로 무작정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가 죽은 애인과 닮은 복실이(정려원)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이번 드라마가 연기뿐 아니라 자신의 내재된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매 작품에 임할 때마다 인생과 사랑을 배운다는 김래원. 그도 극중 최승희와 같은 사랑을 해봤을까?
“제게 승희처럼 아픈 사랑의 기억은 없어요. 하지만 호주에서 사별 장면을 찍고 한국에서
다시 복실이(정려원)를 만났는데, 혜수(정려원) 생각에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승희는 상처가 많은 캐릭터라 느낌이 좀 무겁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모습도 많아요. 이번 작품의 매력은 정극과 코미디를 같이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에요.”
김래원은 “어린 시절의 꿈이 감독었는데 이번 드라마을 통해 어설프게나마 꿈을 이뤘다”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짓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 평소 꿈꾸던 연출자가 된 기분을 묻자 “아직까지 는감히 진짜 영화를 찍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극중에서 감독이 되어보니 너무 흥분되더라구요. 스태프들 말이 만약 제가 실제 감독이었다면 엄청 피곤한 감독이 됐을 거래요. 극중 감독으로 변한 제 모습에 맞는 나만의 ‘큐’ 사인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관심 있게 지켜봐 주세요.”
김래원은 이번 드라마에서 정려원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정려원은 지난해 최고의 히트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가슴 아픈 사랑을 간직한 여인으로 등장해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런 정려원이 촌스럽고 엉뚱한 캐릭터의 복실이를 맡게 됐다고 했을 때 김래원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의 정려원이 작품 속 복실이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 지금은 ‘정려원은 내가 아는 가장 촌스러운 여자’라고 말할 만큼 정려원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만큼 두 사람이 극중 인물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리라.
“데뷔 10년, 저만의 타이틀을 만들어야죠”
올해 스물여섯인 김래원은 나이에 비해 적잖은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다. 지난 1997년 MBC-TV 청소년 드라마 ‘나’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 ‘도둑의 딸’ ‘반쪽이네’ 등과 영화 ‘청춘’ ‘하피’ ‘남자의 향기’ ‘2424’ 등에 출연했다. 그는 영화 ‘청춘’으로 2000년 청룡영화제 남우신인상을 받았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데뷔 이후 줄곧 쉬지 않고 작품에 출연했음에도 대중의 기억 속에서 밀려났던 게 사실이다.
그런 그를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시킨 작품은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하지만 옥탑방에서 더부살이를 하던 철부지 법대생의 모습이 너무도 강해 웬만한 캐릭터로는 만회(?)가 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올해로 데뷔 10년째를 맞는 그의 각오는 남다르다.
“‘옥탑방 고양이’ 출연 이후 저를 코믹한 캐릭터로만 떠올리는 팬들이 많은데 저는 원래 좀 거칠고 강한 스타일이에요. 그동안 제 나이에 맞는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사랑받은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제 이름만 들어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저만의 타이틀을 갖고 싶고,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 폭넓은 연기자로 인정받고 싶어요.”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현실의 그는 ‘옥탑방 고양이’에서처럼 장난기가 많지도 까불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로 자신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줄 아는 배우다.
올해로 데뷔 10년째를 맞은 김래원은 태식을 통해 진정한 연기파 배우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 매 작품마다 새롭게 변신하는 그의 모습이 영화 ‘해바라기’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기대된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