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기획자.
자본주의 사회의 첨단을 달리는 자기중심과 가족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여자.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끊고 맺음이 분명하다.
혁주와 닮은 점이 있다면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필요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필요하다고
여긴다. 당연히 결혼은 흥정과 거래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좋아하던 남자가 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일을 황 여사를 통해 배운다. 공부 좀 했다고 상식과 원칙이란 명분 하에 잘난 척 하는 족속이
젤 질색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꿈만 먹고산다는 것은 허공을 잡는 소리니까.
자기만의 느낌과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자 하는 결혼관 때문에 결혼이 늦었다.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컸지만,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결혼 앞에 혁주와 선을 본다. 늦은 결혼만큼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은 숨겨진 욕망이 있었을까? 잘 나간다는 명문 대학을 나오고 외모 준수한 혁주가 첫눈에 들었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장래 성형외과 의사라고 하질 않는가? 자신의 재산을 어느 정도 혁주 이름으로
돌리는 여우 짓도 해 보고, 시어머니의 과부 스트레스도 돈으로 풀어 드리고, 적어도 그녀에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딸을 낳고 다시 임신 할 수 없기까지는, 정애숙 역시 황 여사와 마찬가지로 운이
좋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들을 낳을 수 없다고 하니까 더 아들이 갖고 싶었다. 태어나서 이루지 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던 그녀였는데….
혁주가 아들이 있다고 했다. 남편은 결혼 전에 방황을 했었다고 말한다. 애숙은 기가 막혔지만 용서하기로
했다. 결혼 전이니까, 자신을 알고 나서 이루어 진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 여자가 차문경이라니…
문경의 생모요구도 용납했다. 자신은 자궁 없는 여자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숙은 악몽을
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